(서울=연합인포맥스) 1993년 시작된 중국 난징대(南京大) 학생들의 발칙한 상상이 중국 소비시장을 들썩이게 할 줄 누가 알았을까. 홀로 외롭게 지내야 하는 솔로 친구들을 챙겨주자고 기념일을 만든 게 중국의 최대 쇼핑 데이가 될 줄이야. '빛나는 막대기'라는 의미로 배우자나 애인이 없는 싱글(single)을 뜻하는 광군(光棍). 외로운 숫자인 1이 네개나 겹치는 11월 11일은 그래서 광군절이 됐다. 11이 두 번 겹쳐 솽스이(雙11·쌍십일)라고도 한다.

"외로움을 쇼핑으로 달래자"는 고도의 마케팅을 끌어들인 것은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였다. 작년 11월 11일 알리바바를 통해 팔려나간 물건 액수는 무려 2천135억위안(한화 약 34조7천억원). 역대 최대였다. 1년 전보다 27%나 급증했다. 하루 동안 거래된 주문만 10억4천200만건에 달했다. 역시나 사상 최대였다. 애플과 하이얼, 샤오미 등 237개 브랜드는 하루 만에 1억개 넘게 팔렸다. 2009년 첫 24시간 할인행사 때 거래액은 5천200만위안(약 85억원)이었다. 10년 만에 4천배 넘게 커진 셈이다. 중국 인구가 14억이 넘는다는 것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엄청난 숫자임은 틀림없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작년 매출은 245조원. 알리바바는 삼성전자가 1년 동안 번 것의 7분의 1을 단 하루 만에 만들어냈다.

광군절이 끝나면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 이하 블프데이)가 찾아온다. 11월 넷째 주 목요일인 추수감사절 다음날 금요일이다. 본격적으로 크리스마스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쇼핑에 나서는 때다. 보통 그 다음 주 월요일(Cyber Monday, 사이버 먼데이)까지 이어진다. 미국 소매상들이 쓰는 금전 출납부에서 이익을 검은색으로 기록하는 데서 유래했다. 추수감사절까지 적자를 봐 빨간색으로 기입하던 금전 출납부는 이날을 기점으로 검은색으로 바뀐다고 한다. 미국 소매업 연간 매출의 20% 이상이 이 기간에 발생한다고 하니 틀린 말도 아니다.

지난해 블프데이 기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쇼핑을 한 소비자는 무려 9천만명에 달했다. 주로 오프라인 위주로 이뤄지던 블프데이 쇼핑 행태가 온라인으로도 확산한 결과다. 맥킨지에 따르면 지난해 추수감사절 이후 크리스마스까지 미국 소비자들이 쇼핑에 지출한 금액은 8천500억 달러에 달했다. 6년래 최대였다. 오프라인에 온라인까지 더해지면서 규모가 확대됐다. 이른 아침부터 물건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던 풍경은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이때를 기다리는 소비자들의 마음은 여전하다.

광군제와 블프데이 성공의 최대 비결은 뭐니 뭐니 해도 가격 할인에 있다. 평소 사고 싶었지만, 너무 비싼 LG전자의 올레드(OLED) TV도 삼성전자의 QLED TV도 이때 만큼은 도전해 볼 수 있다. 할인율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제품별로 다르지만, 최대 70∼80% 수준의 할인율이 적용되는 제품들도 부지기수다. 소위 떨이 제품이 아닐까 하겠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이때를 위해 제조사와 유통업체, 카드사 등 금융사들은 최대한 가격을 낮추기 위한 전략을 짜고 물건을 준비해 놓는다. 최근에는 물류, 유통에 클라우드 기술까지 도입해 단가를 낮추기도 한다. 국내 소비자들이 이때를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외에서 결제되는 카드를 준비하고, 배송을 맡을 대행사를 찾아놓고, 아마존 등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관세도 꼼꼼히 따져보는 등 광군제와 블프데이 맞이 준비는 철저하다.

이런 와중에 우리나라에서도 쇼핑 데이가 시작된다. '코리아 세일 페스타(KOREA Sale FESTA)'다. 내수침체를 극복하자는 취지에서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놨던 '관제' 쇼핑 데이다. 한국판 블랙 프라이데이를 표방했지만, 정부가 주도하고, 기업들이 마지못해 참여하는 정도의 말 그대로 행사에 그쳤다. 올해도 어김없이 열린다. 보통 9∼10월에 열리던 것이 올해는 광군제와 블프데이와 비슷한 기간인 11월1일부터 22일까지 열린다. 그간 정부 주도의 전시행정이라는 지적이 일었던 것을 의식한 탓인지 올해 행사 추진위원회는 전부 민간으로 바뀌었다. 정부는 그저 지원하고 후원하는 정도에 그치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관심이 없다. 이런 게 있는지조차 모르는 소비자들도 많다. 그저 또 다른 할인행사 정도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이유는 하나다. 물건값이 별로 싸지 않기 때문이다. 유통업체들이 상시로 진행하는 할인행사와 뭐가 다른지도 모르겠다는 지적도 많다. 할인율이 높은 제품은 그저 그런 철이 지난 재고품인 경우가 허다하다.

정부가 닦달해서 만든 행사이다 보니 제조와 유통업체, 금융사들은 그저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올해처럼 민간에 위원장 자리를 내준다고 참여율이 높아지고 물건값이 싸질까. 소비자들을 끌어들일 비책이 있어야 한다. 기왕에 정부가 주도하지 않고 지원과 후원을 하겠다고 했으니 통 크게 한번 하자. 물건값 낮추기 프로젝트에 정부가 선봉에 서고 제조사와 유통사, 금융사가 따라오게 하는 것은 어떨까. 모든 공산품에 붙는 10%의 부가가치세를 3주만 깎아주자. 경기 부양을 위해 유류세도 한시적으로 깎아주지 않았는가. 부가세를 깎아준 만큼 제조사와 유통사도 그에 합당한 수준 이상으로 제품 가격을 낮추자. 정부와 민간이 손을 잡은 '할인율 극대화 매칭 프로젝트'로 부를 수도 있겠다. 여기에 카드사도 끼어들면 더 좋다. 물류 업체들도 동참해 배송비를 깎아주자. 광군절이나 블프데이처럼 70∼80%의 할인율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소비자 선호가 높은 제품들에 우선 적용해 보자. 코리아 세일 페스타 기간에 고가의 전자제품을 싹 다 바꿀 수도 있구나 하는 인식을 심어줘야 국민도 참여한다. 세금 깎아준다고 또 욕하진 말자. 내수가 망가지고, 기업이 어려워져 또 엄한 곳에 세금을 퍼붓느니 차라기 국민에게 직접 돌려주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제조업체와 유통업체들이 어렵다고 아우성인데 물건 제대로 팔 수 있는 판을 한번 깔아주자. 모두에게 이득이 돼야 축제가 아니겠는가.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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