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연합인포맥스) 최진우 기자 =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통화정책당국인 한국은행의 '맨데이트(Mandate)'에 변화를 요구했다. 특히, 한은법에서 금융안정 맨데이트를 빼고 고유의 책무인 물가안정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계부채 등으로 대변되는 금융안정에만 쏠리지 말고 물가안정이라는 고유한 책무에 집중해야 디플레이션 가능성도 차단할 수 있다는 게 KDI의 생각이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 전망총괄(박사)은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행법에 있는 통화정책의 운용체계를 재검토하라는 게 무슨 말인가'라고 묻는 말에 "금융안정 목표를 삭제하라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한국은행은 글로벌 금융위기 후인 지난 2011년 한은법을 개정하면서 물가 안정에 금융안정을 통화정책의 목표로 추가한 바 있다.

KDI는 법이 개정된 지 8년 만에 이를 '삭제'하라고 주문한 셈이다.

이유는 하나다. 한국은행이 가계부채 관리에 매몰돼 본연의 임무인 물가 안정에는 힘쓰지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금리를 2차례 올린 것도 낮은 물가는 외면하고 가계부채 증가를 막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는 "2013년부터 저물가 상황이 있었다"면서 "(작년) 11월 말 물가 상승률이 낮고 경기가 둔화했다고 판단했다면 금리를 인하할 여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 박사는 "그러나 가계부채가 늘고 있었기 때문에 금리를 인상한다고 결정문에 나와 있다"면서 "그걸 생각할 때 물가안정보다는 (당시에는) 금융안정을 중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KDI는 현재 통화정책에서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의 필요성이 동시에 발생하면 추구해야 할 목표와 방향에 대한 해석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정 박사는 "현재의 통화정책 운용체계는 물가 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를 지속해서 하회하더라도, 금융안정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통화정책이 물가안정에 중점을 두고 수행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금융안정을 통화정책이라는 일차적 목표 중 하나로 삼기보다는 거시경제 안정이라는 큰 틀에서 이해하고 추구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앞으로 통화정책이 물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수행한다면, 디플레이션 발생 가능성도 작아진다는 게 정 박사의 생각이다.

정 박사의 생각은 최근 우리나라의 낮은 물가 상승률에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는 지난 8월부터 2달 연속 마이너스(-)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달에도 이와 같은 현상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지난해 농산물과 유가가 높았다는 점을 고려해 공급 요인에 따른 저물가 현상이라고 주장했지만, KDI의 생각은 달랐다.

정 박사는 "공급측의 일시적인 요인만 아니라 수요측도 주요하게 작용했다"면서 "올해 물가 상승률과 경제성장률이 모두 하락한 것은 공급 충격보다는 수요 충격이 더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KDI의 분석에 따르면 식품(식료품 및 에너지제외)과 서비스는 올해 1~9월 기준으로 2013~2018년 평균과 비교했을 때 각각 0.3%포인트, 0.4%포인트 정도 소비자물가 상승률 하락에 기여했다. 이에 반해 날씨에 영향을 받는 식료품이나 유가는 기여도가 -0.2%포인트에 불과했다.

정 박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낮아진 물가 상승률 추세가 주요국에서는 반등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낮은 물가 상승률은 전 세계적인 저물가 현상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물가 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를 지속해서 하회한 만큼 통화정책이 물가 안정을 위해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정 박사는 주장했다.

다만, 정 박사는 '한은에 기준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 달 경제전망에서 말하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jwcho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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