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금융지주사들이 규제포획의 괴물이 되고 있다. 특정 인맥들이 관치금융이 사라진 은행권 등을 비정상적으로 장기간 지배하고 있어서다. 금융당국은 눈치만 살피고 있다. 당국자들은 은행산업 등에 대한 정부의 정당한 간섭이 관치로 비칠 것을 우려해 몸을 사리고 있다.

관치가 사라진 금융업이 규제포획의 덫에 빠진 결과다. 행정학사전 등에 따르면 규제포획은 보호를 필요로 하는 경제주체들(개인 또는 기업)이 이익집단을 형성한 뒤 정부를 설득해 자기네에 유익한 각종 규제정책을 끌어내는 것을 일컫는다.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 스티글러(George Stigler)가 1971년에 발표한 '규제의 경제이론'이라는 논문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정부가 이익집단에 포획되면서 시장원리도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금융업 등 전문성을 띤 산업 분야에서 규제포획이 나타날 개연성이 크다.







<금융당국의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DLF 상품 가입 피해자들>

규제포획의 전형적인 사례가 최근 불거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다. 해당 상품은 기초자산과 손익결정구조 등이 투자자 보호와 거리가 먼 투기적 형태였다. 은행업의 특성상 다루기 힘든 상품이지만 공모규제를 회피하고 투자자보호 및 내부통제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은행들은 사모형태로 판매했다. 투자자 보호는 뒷전이고 판매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은행권의 탐욕이 빚은 대형 금융사고인 셈이다.

이번 사태로 은행권은 공공성이 강한 금융기관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도리를 저버렸다는 비난을 자초했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경제철학의 전환'이라는 저서를 통해 은행업은 사실상 공기업이라고 규정했다. 엄격한 진입규제로 새로 진입할 경쟁자조차 없는 과점을 국가가 공인한다는 이유에서다. 은행은 과점적 지위를 누리면서도 기업대출을 늘리는 데는 인색했다. 대신 은행권은 위험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담보 중심의 가계대출만 늘리는 이른바 '전당포 영업'으로 해마다 천문학적 규모의 이윤을 창출하고 있다. 은행권 등 금융지주가 관치의 그늘을 벗어나면서 경영지표는 호전됐다. 주가를 높이는 데도 나름의 성과를 보여줬다. 하지만 공기업 성격을 가진 은행 등이 금융기관으로서 책임을 다했는지는 의문이다. 지점과 고용을 줄여 경영지표를 호전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금융지주사들은 청년 등의 고용에도 여전히 인색하다.

막대한 이윤을 바탕으로 은행권 등 금융지주 CEO들이 챙기는 보수는 엄청난 규모다. 일부 금융지주 CEO들은 상반기에만 20억원이 넘는 보수를 챙겼다. 연임한 경우까지 감안하면 누적 연봉으로만 100억원 이상 챙긴 금융지주 CEO들이 속출할 전망이다.

특정 인맥의 장기집권이 이어지면서 공공기관 성격을 가진 은행의 사유화가 도를 넘어 선 결과다. 그동안 은행권 등 금융지주사의 대형 금융사고에 대해 금융당국이 지휘책임을 물은 사례도 없다. 관치시비에 휘말릴 수 있어서다. 당국이 위축된 사이에 특정인맥들이 은행업의 경영권을 독차지 하는 등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모피아(Ministry of Finance와 Mafia의 합성어)들이 은행권 등 금융시장의 인사와 자금 배분에 직접 개입하는 관치금융은 경계의 대상이지만 금융당국의 정당한 감독권 행사까지 제한되면 안된다.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서 존재하고 금융은 절도와 규율이다"

경제성장을 주도했던 과거 재무부 출신을 일컫는 모피아들이 입버릇처럼 되뇐 구호다. 금융에 대한 또 다른 본질을 함축한 말이기도 하다. (취재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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