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혁신과 공유 그리고 포용. 최근 경제 트렌드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다. 단순히 정치적 아젠다로만 치부할 수 없는 적잖은 무게의 주제다. 우리의 생존을 지탱시켜 온 전통적 경제의 틀로 바라볼 수 없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는 디지털이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은 이제 독자적 산업이 아니다. 모든 산업 생태계를 연결하는 '초(超) 네트워크'의 가장 기본이 되는 밑줄기다. 빛의 속도로 뛰어가는 디지털의 등에 올라타지 않고서는 생존 자체를 심각히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전통 경제와 산업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기업들의 사투는 그래서 더욱 가열차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성패가 산업과 기업의 미래를 흔들고 있어서다.

우리나라 대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이끄는 이동걸 회장은 "우리 경제가 지속해 성장하려면 새로운 기업이 계속 나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기업도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 경제를 이끌어 온 제조산업이 더는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미국을 보자. 제너럴모터스(GM)도, 포드도 이제는 더는 미국의 대표 기업이 아니다. 그 자리를 꿰찬 것은 페이스북과 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로 대표되는 FAANG이다. 생긴 지 채 20년도 안 된 기업들이다. 글로벌 혁신 기업의 최정점에 이들이 있다. 그들이 창조해 낸 부가가치는 실로 엄청나다. 아이폰으로 전화를 하고, 페이스북에 글을 남기고, 아마존에 들어가 쇼핑을 한다. 넷플릭스 앱을 열어 영화를 보고, 구글을 펼쳐 검색한다. 모두가 다 연결돼 있다. 각자 놀지 않는다. 디지털이 곧 네트워크가 됐다.

하지만 이런 기업들이 혜성처럼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산업과 기업 간 생태계가 중요하다. 서로의 혁신 주제를 공유함으로써 기회를 창조할 수 있도록 하는 밑바탕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혁신 기업들을 발굴하고, 그들에게 서로를 묶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필요한 자금을 대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공무원들의 머리와 정부의 재정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과거 중후장대 산업에 정부가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던 상황과는 다르다. 그런 역할을 할 주체는 시장과 기업이어야 한다. 생존에 대한 위기를 느끼는 곳이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백전백패다. 그래서 최근 엄청난 변신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행보에 눈길이 간다.

현대차가 지난 4일 투자자들 앞에서 발표한 '2025 전략'에는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생각하는 미래가 고스란히 담겼다. 전략의 핵심은 모빌리티 솔루션으로 요약된다. 강력한 엔진을 탑재한 자동차를 만드는 완성차 업체로는 현대차의 미래가 없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정 수석부회장은 현대차의 미래는 자동차가 50%, PAV(개인용 비행체)가 30%, 로보틱스가 20%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기반으로 현대차를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고 한다. 좋은 차를 만들어 고객에게 팔면 끝이던 과거와 절연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좋은 차는 그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기 위한 도구가 될 것이란 얘기이기도 하다. 정 수석부회장은 "앞으로 사라지는 차 회사들이 많아질 것이다"라고도 했다. 전통적 완성차 업체의 경영 마인드로는 생존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사람과 사람을 물리적으로 안전하게 연결하고, 고객이 필요로 하는 솔루션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기업의 진보도 어렵다. 정 수석부회장의 이러한 생각은 단순히 전 세계 완성차 업계의 공급과잉에서 비롯된 위기 상황을 타개하려는 차원에서 나온 것만은 아닐 것이다. 특히나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시점에 이 같은 과감한 변신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더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 수석부회장은 이미 주사위를 던졌다. 그 성공 여부를 아직 알 수는 없다. 그런데도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한 새로운 방향은 옳아 보인다.

어느덧 재계의 맏형이 돼 버린 '젊은 총수' 최태원 회장의 최근 행보도 눈길을 주기에 충분하다. 최 회장은 사회적 가치의 전도사다. 재벌 총수가 사회적 가치를 설파하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다. 뭔가 꿍꿍이가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오해도 받는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사회적 가치의 개념을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이는 대목이 많다. 최 회장은 미래로 갈수록 사회는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경제 양극화, 환경, 불평등 등 다양한 문제들이 더욱 심화해 기술과 경제의 발전에도 살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부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기업이 나서 해결책을 모색하고 대안을 던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많은 이윤을 창출해 정부에 세금만 내면 끝이던 시절의 기업이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특히나 기술발전이 고도화하고 디지털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기업이 전통적 사고방식을 고수해서도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고객들은 더욱 스마트해지는 데 기업이 이를 뒤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될 수 있다는 얘기다. 최 회장은 둘을 엮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업이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고 주문한다. 그러면서 기업 간 자산과 노하우, 전략 등을 공유하자고 당부한다. 디지털화로 인해 결국 시장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고객뿐인데 사회적 가치 확장을 위한 기업들의 투자는 궁극적으로 고객에 대한 잠재적 투자라는 게 최 회장의 생각이다. 그가 말하는 주제가 간단하지는 않다. 어떻게 보면 매우 무거우면서도 해결이 쉽지 않은 것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재벌 총수가 먼저 나서 이러한 문제를 우리 사회와 기업들에 던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선하다. 그의 생각이 결실을 보아 경제적 약탈의 시대가 포용의 시대로 더욱 진보했으면 하는 기대를 해 본다.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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