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1865년 영국에서 제정된 '붉은 깃발법'이 21세기 한국에서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이른바 '타다 금지법'인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면서다.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150만명으로 추산되는 '타다' 서비스 이용자는 불법행위 가담자로 전락하게 된다. 타다 서비스의 대주주인 이재웅 쏘카 대표는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개정안이 150년전의 '붉은깃발법'과 다를 것 없다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국회 상임위원회를통과하면서 불법으로 전락할 위기를 맞고 있는 '타다' 서비스>

붉은깃발법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시절에 자동차의 등장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마부와 마차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으로, 정식 명칭은 'The Locomotives on Highways Act(약칭 Locomotive Act)'이다. 영국은 마차 사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의 최고속도를 시속 3km(도심)로 제한하고 기수가 붉은 깃발을 들고 걸어가면 자동차는 그 뒤를 따라가도록 하는 붉은 깃발법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영국은 가장 먼저 자동차 산업을 시작했음에도 독일과 미국에 뒤처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1865년 영국에서 제정돼 1896년까지 약 30년간 시행된 세계 최초의 도로교통법인 동시에 시대착오적 규제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타다 금지법이 21세기형 붉은 깃발법인지 여부는 이해당사자간 논의가 더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당국이 혼란만 자초했다는 비난 여론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을 듯 하다. 당국이 플랫폼 산업에 대한 인식부족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21세기 들어 화두가 된 4차산업혁명의 한 축은 플랫폼 산업이다. 아마존과 알리바바가 전자상거래의 플랫폼이고 에어비앤비와 우버 서비스도 일종의 플랫폼이다. 유튜브는 영상물의 플랫폼으로 기존 방송산업의 생태계에 파괴적인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이 되고 있는 넷플릭스 서비스도 영상 제작물의 유통 플랫폼이다. '겨울왕국2'로 국내에서 관객 1천만명을 끌어모은 월트디즈니도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글로벌 선도기업들은 플랫폼을 선점하기 위해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플랫폼 사업자가 이용자의 시간과 돈을 가져가는 가장 큰 수혜자라는 점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기차역의 플랫폼처럼 산업에서도 돈이 되는 각종 정보와 이용자는 결국은 플랫폼산업으로 몰리게 마련이다. 특히 미디어 기업들은 플랫폼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디어 소비자가 더 이상 컨텐츠 생산자가 선택해주는 고정된 경험을 원하지 않고 있어서다. 광고주도 마찬가지다. 미국 지상파 방송 CBS가 최근 비아컴(Viacom)을 합병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비아컴은 파라마운트 픽처스를 소유한 회사로 아이언맨과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제작한 바 있다. 세계 최대의 음악채널인 MTV도 비아컴의 자회다. 미디어가 플랫폼에 컨텐츠를 제공하는 납품업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바탕으로 자체 플랫폼 구축에 나선 사례다. 미국 최대의 통신사인 AT&T의 타임워너 인수와 월트디즈니의 21세기 폭스 인수도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인수합병의 결과로 2019년 현재 미국 최대 미디어 그룹은 AT&T·워너 미디어(자산가치 4천520억달러)다. 디즈니(3천150억달러), 컴캐스트·NBC 유니버설(3천50억달러), 비아콤CBS(500억달러)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미국은 방송사가 영화제작사를 소유하고 통신사업자가 미디어그룹을 인수해서라도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 산업환경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사례다. 플랫폼 산업에 대한 당국의 인식 부족 탓에 KT,SK텔레콤,LG텔레콤 등 국내 통신사업자들은 역차별의 희생양이 됐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유튜브와 넷플릭스에 이어 디즈니까지 각종 플랫폼 사업자에 초고속 통신망 서비스를 제공하고도 사용료를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있어서다.

타다 서비스도 플랫폼으로 발전하려면 좀 더 구체적인 상생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개인택시 사업자들을 주주로 편입하는 방안이 대안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개인택시 프리미엄을 적정하게 평가한 뒤 일정 금액만큼 지분을 취득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 방안이 도입되면 가장 극렬한 반대세력이 열렬한 지원군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전국단위 플랫폼이 구축되면 지분을 나눈 것 이상으로 기업가치도 커질 수 있다. 플랫폼 전성시대다.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인 듯 하다. (취재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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