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원 기자 =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조원태 회장의 독주에 공식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오면서 경영권을 둘러싸고 봉합된 듯 보였던 한진가(家) 오너 일가의 균열 조짐이 본격화하고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23일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원을 통해 '한진그룹의 현 상황에 대한 조현아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내고 동생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선대 회장의 유훈과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면서 조원태 회장의 독주에 대해 조목조목 문제를 제기했다.

조 전 부사장은 "조원태 대표이사가 공동 경영의 유훈과 달리 한진그룹을 운영해 왔고, 지금도 가족간의 협의에도 무성의와 지연으로 일관하고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상속인간의 실질적인 합의나 충분한 논의 없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대규모 기업집단의 동일인(총수)이 지정됐다"고도 했다.

특히 자신의 복귀와 관련해 어떠한 협의가 없었음에도 대외적으로는 마치 협의가 있는 것처럼 발표되는 것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조 전 부사장은 "자신과 법률대리인의 거듭된 요청에도 최소한의 사전협의도 하지 않고 경영상의 중요 사항이 결정되고 발표됐다"면서 조원태 회장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재계에서는 조 전 부사장의 이러한 강공 드라이브가 어느 정도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보고 있다.

결정적인 계기는 한진그룹의 정기 임원인사에서 자신은 물론 측근들도 대거 배제됐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9일 단행된 정기 임원인사에서 조 전 부사장의 복귀는 무산됐고, 소위 '조현아 라인'으로 분류됐던 상당수의 임원들이 밀려났다.

이에 대해 조 전 부사장은 매우 격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동생인 조현민 전무가 한진칼 전무로 복귀하는 데 성공하자 조 전 부사장의 '복귀설'에도 무게가 실렸었다.

한진그룹 사정에 밝은 재계 관계자는 "정기 임원인사에서 조 전 사장 라인에 섰던 임원들은 모두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며 "대한항공 내 조 전 부사장이 기반이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기내식기판사업본부 소속인 조병택 전무와 양준용 상무, 함건주 상무는 임원인사를 기점으로 모두 물러났다.

기내식기판사업본부는 조 전 부사장이 호텔사업과 함께 애착을 갖고 있는 사업이다. 경영 복귀 이후 자신이 맡아 운영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원인사를 통해 기내식기판사업본부를 책임지게 된 인사는 이승범 부사장으로 조원태 회장의 측근이다.

대한항공이 주요 임원들의 사무실을 리모델링하면서 조현아 전 부사장이 썼던 방을 없앴다는 얘기도 나온다.

임원인사에서는 조 전 부사장 뿐 아니라 조 회장의 모친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측근들도 대거 물러나면서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갈등이 더욱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 전 이사장의 '오른팔'로 알려졌던 이병호 대한항공 전 동남아본부장이 칼리무진으로 전출된 것을 시작으로, 이석우 인력관리본부 상무와 남기송 운항본부 상무 등도 이번 인사에서 일본지점과 한국공항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전 본부장의 경우 인사에 불만을 품고 전출 이후 결국 스스로 사표를 썼다.

이에 반해 조원태 회장 측근들을 대거 승진해 대비를 이뤘다.

델타항공과의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는 데 공을 세운 것으로 알려진 우기홍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했고, 하은용 최고재무책임자(CF0)와 이승범 고객서비스 부문 총괄 임원(CC0) 등도 모두 승진했다.

조 회장과 한진정보통신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것으로 알려진 장성현 부사장은 승진으로 최고마케팅책임자(CM0)를 맡아 향후 대한항공의 마케팅·IT 부문을 책임진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인사를 통해 대한항공 내에서 조 전 부사장과 이 전 이사장의 영향력은 크게 줄어든 반면, 조 회장의 지배력은 더욱 공고해졌다"고 평가했다.

조 전 부사장이 공식적으로 '조원태 체제'에 반기를 들면서 향후 행보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이 한진그룹을 공격해 온 KCGI나 최근 지분을 인수한 반도건설 등과 접촉해 세(勢)를 불려 조원태 회장 측에 맞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반도건설이 아닌 다른 중견 건설사가 한진칼 지분을 매입하고 있다는 소문도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는데, 조 전 부사장 측과 연대를 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현재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부사장의 한진칼 지분은 각각 6.46%와 6.43%로 비슷하다.

15.98%를 보유한 KCGI와 6.28%를 가진 반도건설이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적잖은 변수가 될 수 있다.

조현민 전무와 이명희 전 이사장의 지분은 각각 6.42%와 5.27%다.

지분을 가진 세력 간 합종연횡에 따라 한진그룹의 지배구조가 요동을 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진그룹 주요 계열사의 분리 가능성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조 전 부사장이 지분을 가진 다른 주주들과 접촉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전했다.

실제 조 전 부사장은 "선대 회장의 유훈에 따라 한진그룹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위해 향후 다양한 주주의 의견을 듣고 협의를 진행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j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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