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부가 기업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공인된 사업권, 즉 라이선스다. 금융과 통신, 항공, 면세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선물을 거저 주는 것은 아니다. 상당한 물적·인적 자원을 투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정해 놓은 까다로운 조건도 모두 통과해야만 한다. 과거에 정부가 내주는 라이선스는 안정적으로 돈을 버는 지름길이었다. 그렇다 보니 라이선스를 따기 위한 경쟁은 치열했다. 그 과정에서 특혜 시비 등의 잡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난관을 뚫고 일단 라이선스를 손에 쥐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은 것과 같았다.


2015부터 2년간 이어진 면세점 대전은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기존 면세사업 특허 갱신에 더해 새 사업권까지 추가로 주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불을 댕겼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물론 새 성장 동력이 필요했던 대기업들까지 가세하면서 과열 양상을 보였다. 총수들이 직접 나서 여론전을 펼칠 정도였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한 청년희망펀드에 총수들은 상당 규모의 돈을 쾌척했다. 신동빈(70억원), 이명희·정용진(60억원), 박용만(30억원), 최태원(60억원) 회장 등이 사재를 털어 거금을 내놨다. 각 기업이 제시한 면세점의 주차장 크기조차 치열한 신경전의 대상이 될 정도였다. 결국 '황금알'을 잡은 기업들은 환호했다.


승자의 저주가 눈앞에 나타난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인한 중국의 보복 조치가 결정적이었다. 큰 손이던 중국인들이 한국을 찾지 않자 면세점의 수익은 곤두박질쳤다. 결국 손을 든 곳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SK가 그만뒀고, 한화가 사업권을 내놨다. 두산도 면세사업에서 철수했다. 상당한 손실은 불가피했다. 인력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황금알을 낳을 것으로 기대했던 사업은 애물단지가 됐다.


최근 항공업계는 죽을 맛이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더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면서 설상가상의 위기를 맞고 있다. 80개가 넘는 국가에서 입국을 제한하면서 계류장에 주차된 비행기는 늘어가고 있다. 일감이 없다 보니 항공사 직원들은 무급휴가에 들어갔다. 수익이 나지 않으니 직원들에게 줄 월급도 제대로 못 주고 있다. 특히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난 저비용항공사(LCC)들은 생존의 위기에 놓여있다. 저마다 비상경영을 선포하면서 마른 수건을 쥐어짜 보지만 딱히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내외적인 환경 변화가 항공사 경영에 가장 큰 악재가 되고는 있지만, 그 이면에는 정부의 라이선스 남발로 인한 과열 경쟁도 한몫하고 있다. 이미 국내 항공시장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작동되지 않는 시장이 돼 버렸다. 항공편을 이용해 국내외로 들고 나는 사람의 수가 급증하긴 했어도 그 한계는 뚜렷하다. 현재 6개의 LCC가 경쟁하는 가운데 추가로 3개의 LCC가 이륙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코로나19로 수요가 언제쯤 회복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공급은 더 늘어나면서 경쟁 강도는 더욱 세지게 된다. 경쟁체제가 강화되면 소비자 편의가 높아질 것이란 원론적인 접근은 안이하다. 수익이 나지 않는 가운데 경쟁 강도만 높아지면 결국 서비스의 질은 떨어질 게 뻔하다. 여기에 더해 안전 문제까지 불거진다면 재난이다.


국내 1위 LCC인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업계 상황을 고려해 인수를 포기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결국 처음 뜻을 접지 않았다. 동종업계 최초의 인수·합병(M&A)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분석이 많다. 점유율 20%의 대형 LCC가 탄생하게 됐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는 있다. 업계 내 자발적 합종연횡을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이라는 점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최근 항공업계의 어려운 상황을 고려하면 구조조정이 작동되기 시작했다는 신호가 될 수도 있다.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M&A와 같은 사례가 더 나와야 한다. 자발적 M&A를 통해 덩치를 키우거나 사업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얼라이언스 체제를 만들지 않고서는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 이러한 자발적인 움직임이 우선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라이선스를 남발한 정부도 책임을 다해야 한다. 항공사 간 합종연횡이 더욱 활발하게 이뤄지도록 규제를 풀어주고, 적극적인 금융지원에 나서야 한다. 항공업계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대응해선 안 된다. 산업의 육성과 소비자 편의라는 큰 목적에서 라이선스를 내줬다면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의무를 다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지금은 이름도 잊혀진 한진해운 같은 기업이 다시 나오도록 정부가 방치해선 안 된다.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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