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달러가 왕'이었던 시대
[데스크 칼럼]'달러가 왕'이었던 시대
  • 황병극 기자
  • 승인 2020.03.1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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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금융시장에서 달러가 왕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은 달러 부족으로 사실상 경제 주권을 포기했다. 2008년 리먼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외국인 투자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달러-원 환율이 급등하고 달러 조달금리가 치솟았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변방국인 한국의 입장에서는 금융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생기는 현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지자 비슷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환시에서 달러-원 환율은 4년여 만에 가장 높은 1,226.10원까지 상승했다. 달러의 중요한 조달처인 스와프시장에서 FX스와프포인트가 급락했고, 통화스와프(CRS) 금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CRS 금리는 달러를 맡기면서 원화를 빌릴 때 적용되는 금리다. CRS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달러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면 수취하는 달러에 이자를 주는 것은 물론 맞바꾸는 원화에 대해서도 이자도 받는 게 아니라 지급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달러 자금을 확보하려는 심리가 강하다는 방증이다.

이런 현상은 최근 금융시장 흐름이 과거의 금융위기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한 데다 실물경제와 금융 부문의 복합위기 징후까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외화자금 이탈도 현실화하고 있다.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8일 연속으로 순매도하며 한국에서 '엑소더스'를 이어가고 있다. 더욱이 2월 이후 전일까지 외국인은 11조원에 육박하는 한국 주식을 순매도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달리 이번 위기는 은행에서 시작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외화 유동성이 크게 문제시되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과거 은행들이 위기의 중심에 섰을 때는 달러 공급 자체가 어려웠으나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는 논리다.

우리나라의 외화 유동성 지표도 그렇게 나쁘진 않다. 스와프시장 변동성이 확대됐으나, 향후 30일간 순외화 유출 대비 고유동성 외화자산의 비율을 측정하는 지표인 국내은행 외화LCR는 128.3% 수준이다. 규제 수준인 80%를 크게 웃돈다. 1월 말을 기준으로 외환보유액은 4천91억7천만달러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주식시장과 달리 채권시장에서 외국인의 자금이탈도 거의 없다. 외국인은 지난 13일에 이어 16일에도 3천200억원의 원화채를 순매수했다. 3월에만 3조5천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3월 들어 투자채권 만기도래에 따른 상환으로 보유잔액만 6천억원 정도 줄었을 뿐이다.

외환 당국이 스와프시장의 변동성 확대를 실질적인 외화자금 부족으로 평가하기보다 과거 금융위기에서의 학습효과로 일시적인 달러 보유성향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방심은 금물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가 지난 3일 기준금리를 기존 연 1.50~1.70%에서 1.00~1.25%로 50bp 인하한 데 이어 15일엔 급기야 0.00%~0.25%로 100bp나 인하했다. 연준이 2주가 안 되는 사이에 제로금리로 급선회할 정도로 글로벌 경기 위축과 금융 불안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연준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의 조치에도 뉴욕증시가 힘없이 미끄러진 것도 공포심리의 반증이다. 더군다나 제로금리 정책으로 중앙은행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금리 카드도 사라졌다.

한국은행도 긴급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인 연 0.75%로 인하했다. 한은의 금리 인하가 자칫 외국인의 자금이탈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일반적으로 기준금리 인하는 금융시장 안정에는 긍정적이나 원화값 하락을 자극함으로써 외환 부분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는 외환부문의 안정 없이는 국내금융시장이나 자산시장의 안정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시장의 패닉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현금이 왕이 되면 국내에서는 달러 유동성, 즉 달러가 최고라는 심리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시장에 대한 세심한 관리가 절실하다. 외국인 투자자금은 물론 외화자금시장의 변화와 재정거래 유인 등 시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필요시에는 외화 유동성 공급과 같은 적절한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 다시 한번 외환당국의 역할을 기대한다. (정책금융부장 황병극)

ec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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