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투자라는 게 그렇듯, 최악의 위기가 인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일 수 있다. 난세에 영웅이 나오는 것도 투자의 세계다.

이른바 '코로나19 붕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2020년 1분기 금융시장은 대 공황급 위기를 맞았다.

2월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며 순항하던 뉴욕증시는 3월 빠르고 가파르게 떨어졌다. 지수 차트를 보면 수직 낙하다. 손 쓸 틈도 없이 급락한 만큼 웬만한 장기 투자자 아니고는 마이너스 성적표를 들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미 국채 투자, 금으로도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달러 현금을 쥐고 있는 투자자들이 유일한 승자였다.

이런 상황에서 1분기 4,000%가 넘는 '미친' 투자 수익률을 올린 이가 나타났다.

마크 스피츠나겔. 그의 이름과 함께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스쳐 지나간다면 맞다. 스피츠나겔은 '블랙스완',' 테일 리스크'에 베팅해 10여년 전 이미 명성을 크게 얻은 스타 펀드매니저다.

블랙스완은 일어날 확률이 극히 낮은 일이 일어나는 상황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월가 투자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금융위기 당시 처음 사용했다. 테일 리스크는 확률은 낮지만 큰 피해를 주는 꼬리 위험을 뜻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입수한 고객 레터에 따르면 스피츠나겔이 이끄는 유니버사 인베스트먼트는 '꼬리 위험 헤지 전략'으로 1분기에 4,144%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2월부터 대박 설이 흘러나왔지만, 구체적인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다.

꼬리 위험 헤지 전략은 옵션과 상품 등에서 포지션을 조합해 금융시장의 예측하기 힘든 급격한 변화에 투자하는 전략이다. 극단적인 시장 이벤트에 대비한 보험 전략으로도 불린다.

유니버사는 4,144% 수치보다 꼬리 위험 헤지 전략이 포트폴리오를 보호하는 데 얼마나 강력한 효과를 냈는지에 주목했다.

지난달 S&P500은 12.4% 하락했다. 투자자가 유니버사의 꼬리 위험 헤지 전략에 3.3%를 배분하고, 나머지를 주식시장 벤치마크를 따르는 인덱스펀드에 투자했다면 0.4%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다고 스피츠나겔은 설명했다. 금이나 채권, 헤지펀드 바스켓 등을 포트폴리오에 담는 다른 위험 완화 트레이드는 플러스 수익률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포트폴리오의 작은 부분이라도 블랙스완 전략을 넣었다면 급락장에서도 잃지 않고 오히려 벌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버스 베팅은 작은 손실이라도 자주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유니버사는 이런 단편적인 베팅을 하지 않는다.

스피츠나겔은 "우리 포지션은 시장에 볼록하다(convex)"고 말하기도 했다. 유니버사가 옵션과 여러 상품을 활용하는 전략이 수익을 낼 때 직선형이 아니라 더 크게 증폭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쯤 되니 미래를 예언하는 그의 '크리스털 볼'이 궁금해진다.

그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며 "최근 노다지 같은 수익률은 코로나바이러스가 경제적으로 파멸적인 팬데믹으로 변할 것이라는 어떤 예감에 근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몇 달, 몇 년 내 무엇이 오든 상관할 필요가 없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그는 이전부터 연방준비제도(Fed·연준)발 거품에 대해 고민했다. "팬데믹이 거품을 터트리지 않는다면, 물론 결국에는 거품을 터트리는 다른 어떤 것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랜 기간 우리가 거품 속에 있었고, 중앙은행이 이를 계속 부풀리는 힘이었다는 것이다.

지금 연준은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수 조달러를 동원하고 있다. 거품을 걷어내기보다 더 키우고 있는 셈이다. 스피츠나겔의 주장대로라면 결국 심판의 날, 더 혹독한 대가를 치를 수 있다.

2009년 월가의 스타로 떠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당시 38세의 펀드매니저 스피츠나겔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유니버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장 변동성에 베팅해 100% 수익률을 올렸다.

그를 조명하는 기사도 잇따랐다. 스피츠나겔은 1990년대 초 시카고 선물거래소에서 트레이더로 활동하며 상품을 사고팔기도 했는데, 여기서 빨리 수익을 챙겨 나오고,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 말 뉴욕대에서 블랙스완의 탈레브 교수와 운명적으로 만나 시장이 급격하게 떨어지면 수익이 나는 헤지펀드를 논의했다. 그때부터 시장이 무너질지 걱정할 필요가 없는 포지션과 펀드에 대해 고민했고 유니버사의 창립까지 이어졌다.

시장 반등과 함께 잊혔던 그는 다우지수가 하루 588포인트 떨어졌던 2015년 8월 유니버사가 하루에만 10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여 다시 화제가 됐다.

사실, 시장이 안정적일 때 이런 블랙스완 펀드는 마이너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물지만 예기치 못한 위기가 왔을 때 매달 조금씩 지불하는 보험료를 능가하는 상당한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결국 10년간 보면 롱 온리 전략을 압도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제 나이 50을 바라보는 스피츠나겔은 코로나19로 다시 한번 존재감을 나타냈다. 당분간은 이 '위기의 사나이'의 행보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곽세연 특파원)

sykw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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