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출공급 압박 은행산업에 '부정적'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미국에 이어 한국도 은행의 자본 및 유동성 규제를 완화하고 나섰지만 은행산업에 오히려 독이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한시적인 규제 완화가 중장기적으로 신용위험 증가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이제는 성장이 아닌 관리모드에 돌입한 은행권도 정부의 한시적인 규제 완화에만 힘입어 대출 공급을 무한정 늘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21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9일 발표된 금융규제 유연화 방안의 핵심은 금융권의 자금공급에 숨통을 틔워준 데 있었다.

금융당국은 내년 6월 말까지 은행의 예대율이 105%(현행 규제비율 100%)에 근접하지 않더라도 이를 제재하지 않기로 했다. 최소 향후 1년간은 추가로 자금을 더 공급하란 뜻이다. 당국이 추산한 기대효과는 72조원에 달했다. 경기회복 속도에 따라 제재 유예 기간이 연장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기업대출에 대해서는 특단의 조치를 했다.

금융당국은 기업대출에 대한 자본규제 부담을 줄여주는 바젤Ⅲ 최종안을 올해 2분기부터 앞당겨 실시함으로써 은행의 평균 BIS비율을 0.8%P나 끌어올렸다.

지난해 말 기준 은행의 총자본은 238조2천억원으로 당시 BIS비율은 15.25%였다. BIS비율이 0.8%P 상승하면 얻게 된 자본은 12조5천억원, 당국은 이를 통해 최대 259조원의 자금공급이 가능하다고 추산했다.

또 9월까지는 은행의 통합(원화+외화) 유동성 커버리지 비율(LCR)을 85%(현행 규제비율 100%)까지만 관리하면 된다.

3월 말 기준 신한(103.5%)·국민(103.0%)·하나(103.1%)·우리(104.1%)·기업(113.0%)·농협(121.8%) 등 시중은행의 통합 LCR은 105% 안팎의 수준에서 관리되고 있다. 이번 조치로 약 20%P에 가까운 여유가 생겼다. 그만큼 향후 6개월간은 반드시 보유해야 하는 유동성에 대한 압박 없이 시중으로 자금을 흘려보내란 얘기다.

앞서 미국도 비슷한 개념의 은행 자본규제를 완화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은행 지주회사의 보완적 레버리지 비율(SLR)을 산정하는 방식을 개선했다.

이는 전체 익스포저 대비 기본자본(티어1)을 3% 이상 유지하도록 하는 규제지만, 연준은 내년 말까지 국채와 지급준비금을 제외해 SLR를 산정토록 했다. 최근 미국의 무제한 양적완화와 긴급 유동성기구 설치가 은행의 지준 확대로 이어진 것을 고려한 조치다.

씨티은행은 이번 조치로 미국의 대형은행 레버리지 익스포저가 1조4천억달러 가까이 줄어들고, SLR 비율이 0.5~1.2%P 가까이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지역은행도 가계와 기업대출 여력을 늘리고자 연말까지 레버리지 규제비율을 현행 9%에서 8%P로 낮췄다.

은행의 충당금 적립 부담도 낮췄다.

연준은 올해 1월부터 적용이 예정됐던 기대손실(CECL) 제도 도입 시기를 연말로 1년 늦췄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그간 손상된 채권에만 충당금을 쌓던 은행은 기대손실을 추정해 정상 채권에 대해서도 충당금을 의무적으로 쌓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만기 연장과 상환유예 대출에 대해 기존 자산건전성 분류 기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연체로 채권 가치가 떨어져 '고정이하'로 분류, 충당금 적립이 필요했던 대출에 시간을 벌어줌으로써 은행의 충당금 적립 의무를 없애준 셈이다.

연준은 향후에도 은행 자금중개기능을 강화하고자 미세조정을 이어갈 방침이다.

금융위원회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상황을 봐 가며 필요한 경우 규제 완화의 기간 연장은 물론 그 이상의 조치도 강구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완화 정책에도 은행의 표정은 밝지 않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국가가 은행의 희생을 강요한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며 "최근 미국의 완화 조치도 그렇지만 금융당국이 추산한 400조원 규모의 대출 여력이 현실적으로 공급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분기 마이너스(-) 성장이 예고된 상황에서 경기회복 속도가 더뎌진다면, 이는 고스란히 은행의 신용리스크로 전이될 수밖에 없어서다.

또 다른 시중은행 임원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중소기업 대상 코로나19 대출에 대해선 사실상 '무조건' 대출을 공급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가계와 기업 여신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며 "향후 3년 내 신용리스크가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당국의 이번 조치가 일시적으로 은행이 마주한 부담을 덜어준 것은 맞지만, 장기적으로 은행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게 금융권의 공통된 평가다.

조보람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시적 규제 완화는 금융사의 국가적 서비스에 대한 압박을 시사한다"며 "개별적으로는 지속적인 디스카운트 요인에 해당되는 셈"이라고 진단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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