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Fed)의장이 늘 챙겼던 것으로 알려진 차트 하나가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 '평균실업 듀레이션(그림)'이 그 주인공이다. 27주 이상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의 비율인 장기실업비율의 보조지표로도 활용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지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팬데믹(대유행)에 따른 글로벌 경제 충격이 대공황 급인지 여부를 가리는 가늠자가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에서 미국의 소비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외신 등에 따르면 벤 버냉키 전 의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부터 치솟기 시작한 미국 '평균 실업 듀레이션' 추이를 늘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에 리먼브러더스 파산 등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된 지 2년 뒤부터 실업 듀레이션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등 일자리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져서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950년대부터 데이터가 집계된 이후 미국 실업자들의 평균 실업 듀레이션은 20주를 넘은 경우가 거의 없었다. 1980년대 중반 잠깐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미국 실업자들의 평균 실업 듀레이션은 금융위기 전까지 10~20주에서 안정적으로 관리됐다.

60년 이상 안정적으로 관리되던 미국 실업자들의 평균 실업 듀레이션은 금융위기 이후부터는 장기박스권을 상향돌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파장이 본격화된 2010년 30주를 상향돌파한 데 이어 2011년에는 40주까지 늘어났다. 버냉키 전 의장 등 미 연준이 제로금리를 도입한 데 이어 양적 완화까지 실시하는등 '헬리콥터 머니'를 쏟아부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후 미국 경제는 다우지수 기준으로 3배 이상 오르는 등 빅랠리를 펼쳐 코로나 19가 본격화되기 직전까지 사실상 완전고용을 유지했다. 평균실업 듀레이션도 지난 10년간 꾸준하게 내려서 지난해 말 기준으로 21주 안팎 수준까지 내려섰다.

아직은 코로나 19에 따른 파장이 평균실업기간 듀레이션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미국 노동통계청((U.S. Bureau of Labor Statistics:BLS)에 따르면 계절조정을 거치지 않은 지난해 4월 평균실업 듀레이션은 24.2주였다. 올해 3월 17.5주였고 4월은 7.7주로 급락했다. 코로나 19에 따른 팬데믹 직전까지 사실상 완전고용상태였던 데 따른 관성이 작용한 결과로 풀이되고 있다.

이제부터 평균실업 듀레이션은 치솟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우선 미국의 4월 실업률이 전달의 4.4%에서 14.7%로 폭등했다. 폴 크루그먼 등 일부 경제전문가는 실업률이 곧 20%를 넘어설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헬리콥터 머니 등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넘게 눈물겹게 늘려왔던 일자리 2천300만개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장기실업을 의미하는 27주 이상 실업자 수도 지난 4월에는 92만9천명만 집계됐다. 전월인 3월의 124만5천명은 물론 지난해 같은 기간 123만4천명보다도 적다. 아직은 5주 이하의 단기실업자만 1천388만명으로 전월의 311만8천명보다 큰 폭으로 늘어난 수준이다.

이제부터는 미국의 신규실업수당 청구 건수 등 단기적인 지표보다 평균실업 듀레이션 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근본적인 변화의 추이를 살펴볼 수 있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은 가계의 소비, 기업의 투자, 정부의 재정지출, 경상수지의 함수다. 미국은 이 가운데 가계의 소비가 68%를 차지하는 등 가계의 지출에 의존하는 편중된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대량 실업 장기화는 다른 나라에 비해 GDP에 훨씬 치명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를 막기 위해 미국 정부는 대규모로 재정을 풀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코로나 19에 따른 충격으로 일자리의 지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경제 봉쇄조치를 풀어도 유통·여행 등 일자리 창출 능력이 큰 부문이 예전처럼 일자리를 늘리지 못할 전망이다. 경기침체가 기정사실이 되면서 자동차 등 제조업 부문도 부진의 수렁으로 빠져든 탓에 정리 해고를 본격화할 수 있다.

지난 10년간 경제 전문가들의 뇌리에서 지워졌던 미국의 평균실업 듀레이션 차트가 새삼 중요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가계의 일자리 상황과 소비가 나아지지 않으면 글로벌 경기 침체는 불가피하다. 우리도 그 파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국제경제부 기자)

neo@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08시 52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