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 지난 5일 정부서울청사 16층. 금융위원회 직원들을 위한 도서관이자 휴게실인 공간 '꼬북(go-book)'에 왕유 시인의 한시가 울려 퍼졌다. 김근익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의 퇴임식은 그렇게 시작했다.

금융위에서 상임위원이 아닌 1급 인사의 퇴임식이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FIU 원장이나 사무처장의 마지막은 그간 직원들과의 악수와 꽃다발 증정, 그리고 배웅이 끝이었다. 별도의 임기를 주지 않아 마지막을 준비하기가 어려워서다. 그래서 쓸쓸했다.

퇴임식은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아이디어였다. 과거 인사과장이 전한 최후의 통첩을 받고 1급 신분으로 기획재정부를 떠나라던 소식을 들었던 은 위원장은, 당시 국제금융국 후배들이 만들어준 송별회를 잊지 못했다. 공무원 생활이 행복했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도 그날의 따뜻했던 송별회 덕이었다. 한국투자공사(KIC)와 수출입은행으로 자리를 옮겨서도 함께 일한 이들의 위엄있는 마지막을 챙겨온 것도 그날의 송별회 때문이었다.

이날 퇴임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후배들은 김 원장과의 추억을 털어놨고, 그를 '형'이라 부르며 화이팅을 외쳐줬다.

'조직을 배신하라'

퇴임식 말미에, 은 위원장은 김 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김 원장은 이날부터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은 위원장은 "조직을 배신하고 금감원에 뿌리를 내려 직원들의 신망을 얻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금융위도 조직원의 배신을 이해해주는 큰 조직이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어려운 자리다. 혼연일체를 외치지만 한 몸이 되기 쉽지 않은 금융위와 금감원의 역학관계에서 중심을 잡기란 녹록지 않다. 금융위 출신의 많은 수석부원장이 가교 역할을 자처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모두로부터의 서운함 뿐이었다.

이미 견제는 시작됐다. 금감원 노조는 이날 김 원장의 출근 저지 시위에 돌입했다. 금융위 출신 수석부원장을 '낙하산 인사'로 규정하고, 김 원장에게 대화를 요구했다. 최근에는 유광열 전 수석부원장을 단체협약 위반으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고발했다가 이를 취하하기도 했다.

노조의 액션은 새로운 것 없는 통과의례지만, 수석부원장의 험로는 어느 정도 예고됐다. 조직을 배신하라는 은 위원장의 당부는 그 험로를 걸어갈 수석부원장의 이정표였다.

'많이 듣겠다'

퇴임식을 끝으로 금융위를 등지고 금감원을 향한 첫 출근길에서 김 원장, 아니 김 수석부원장이 내뱉은 첫 마디였다. 금감원 식구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깊이 담겠다는 수석부원장의 뿌리가 깊어지길 기대해본다. (정책금융부 정지서 김예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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