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두더지 잡기의 허망함
[데스크 칼럼] 두더지 잡기의 허망함
  • 고유권 기자
  • 승인 2020.06.3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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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2017년 12월로 돌아가 보자.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서울발로 한국의 비트코인 '광풍'을 조명하는 기사를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가상화폐 열기가 한국보다 더 뜨거운 곳은 없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17년 초만 해도 100만원 선에서 거래되던 비트코인은 12월 8일 2천499만원까지 치솟았다. 직장인은 물론 학생과 주부까지 막차에 타기 위해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끌어모아 가상화폐 거래소를 들락거렸다. 뒤늦게 정부가 나섰다. 관계기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규제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비트코인 가격은 40% 넘게 폭락했다. 미국에서는 20%가량 떨어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두 배 넘게 더 하락했다. '김치 프리미엄'의 몰락이라는 말이 나왔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희한한 광경이었다.

해를 넘긴 2018년 1월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까지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강경 발언을 내놨다. 2천만원을 회복했던 비트코인 가격은 다시 급락했다. 투자자들은 다시 패닉에 빠졌다. 코스닥시장에 몰려있던 가상화폐 테마주들은 줄줄이 가격제한폭까지 떨어졌다. 성난 투자자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로 달려가 융단폭격을 가했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과 경제부총리까지 나서 "확정된 사안이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표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여당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지 말라"고 일침을 날렸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도 한마디 거들었다. "엇박자나 혼선으로 비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혼선은 계속됐다. 가상화폐 가격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금융감독원 직원이 정부의 규제 대책을 미리 알고 가상화폐를 팔아 차익을 거뒀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분노의 불은 다시 붙었다. 가상화폐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는 말 그대로 성토장이었다. 국민이 하면 투기고, 금감원 직원이 하면 투자냐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특히 20·30세대의 분노는 상상 이상이었다. 가상화폐를 마치 인생 역전의 동아줄로 여겼던 세대였다. 부자가 될 수 있는 특급열차에 오르는 사다리를 걷어찼다는 분노를 가라앉히려는 그 어떤 말도 먹히지 않았다. 투기의 광풍이 공정의 문제로 치환됐다. 가상화폐 투자가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합리적 논쟁은 이미 먼발치가 됐다. 20대는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안티'가 됐다. 2017년 말 1천865만7천원이던 비트코인 가격은 2018년 말 428만9천원으로 77% 급락한 채 마감됐다.

비슷한 광경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이번엔 부동산이다. 지난 17일 발표한 정부의 6·17 대책의 후폭풍이 거세다. 현 정부 들어 21번째 대책이다.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사 차익을 노리는 갭투자를 차단하고, 수도권 거의 전 지역을 규제지역으로 묶었지만, 어김없이 풍선효과는 나타났다. 대책 이틀 전 조사한 김포의 아파트값 상승률은 0.02%에 불과했지만, 대책 일주일 만에 1.88% 올랐다. 일주일 새 상승률이 90배에 달했다. 규제를 피한 효과였다. 고삐 풀린 유동성은 정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틈새가 보이면 어김없이 돈은 향했다. 돈줄이 막히고 규제에 묶여 이도 저도 못하는 사람들만 바보가 되고 있다는 성토도 쏟아진다. 일부 젊은 세대는 "왜 우리는 부동산으로 돈을 벌면 안 되느냐"는 분노를 표출한다. 투자 방해냐 투기 억제냐의 논쟁이 다시 벌어진다. 안정적 주거에 대한 논의는 하늘로 날아갔다. 갭투자 억제가 전세 물량의 씨를 마르게 해 가을철 전세대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주장마저 나온다. 집 마련이 사실상 어려워 전세살이를 해야 하는 젊은 세대들은 다시 공정의 문제를 제기한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21번의 대책을 내놓으면서 꼭 빠지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핀셋 규제'다. 투기적 요소는 철저히 차단하면서도 실수요는 살리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말이 좋아 핀셋 규제이지 두더지 잡기 대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부동산 대책을 두고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모두 비판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저기서 솟구치는 두더지를 타깃 삼아서 정확히 내려치고 만점을 받았을 때의 카타르시스는 없었다. 그저 방망이만 휘두르고 두더지는 잡지도 못하고 있다. 땀만 뻘뻘 흘린다. 그런데도 정부의 고위 관리들은 여전히 추가 대책이 남아있다는 헛말만 남발한다. 유튜브에서는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찬찬히 설명해 주고 전략을 짜주는 사람만도 수천 명이다. 이젠 정부가 뭐라 해도 믿지 않는 분위기다. 정부의 다음 대책은 무엇이 될 것이라며 친절히 어떻게 대응하라는 설명도 곁들인다. 방망이를 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셈이다.

최근 50억원에 육박하는 고급 아파트를 매입한 한 지인은 투덜거린다. 보유세와 관리비 등을 고려하면 월 400만원짜리 월세에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입주한 지 한 달 사이에 5억원 가까이 집값이 뛰었지만 달갑지 않단다. 2년마다 돌아오는 전세 계약 만료에 스트레스를 받는 젊은 지인도 불만은 쌓여간다. 주택담보대출을 다 막아놔서 용기를 내 집을 사고 싶어도 살 수 없고, 주인이 전셋값을 얼마나 더 부를지 몰라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직장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싶지만 가지고 있는 돈에 맞춰 전셋집을 구하다 보면 어느 순간 서울의 경계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돈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다들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다.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는 목숨이 돼 버렸다. 이런 현상이 옳으냐 그르냐의 논쟁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나의 주거 안정과 재산형성이 중요하지 대의적 논쟁은 관심 밖이기 때문이다. 특히 집값이 내려가 언젠가는 나도 번듯한 집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란 서민들의 기대는 점점 환상으로 바뀌고 있다. 돈줄을 막아 놓으니 현금 가진 부자들만 더 부자가 되는 기이한 현상을 목도하고 있어서다. 부동산 문제가 경제의 문제가 아닌 또 다른 공정의 문제로 번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민은 여전히 집 여러 채를 가지고 있는 청와대 고위 관리들을 비트코인을 미리 팔아 차익을 남긴 금감원 직원과 다르지 않게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부의 대책은 신뢰에서 시작한다. 믿지 못하면 국민은 따르지 않는다.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pisces73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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