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노미스마] 중국의 디지털화폐 개발 노력
[차현진의 노미스마] 중국의 디지털화폐 개발 노력
  • 연합인포맥스
  • 승인 2020.07.0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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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민은행의 디지털화폐(CBDC) 개발 노력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정보기술(IT) 업계의 관점이다. 블록체인기술은 4차 산업혁명의 총아라고 여겨졌으나 2017년 하반기 가상통화 열풍을 정점으로 그 관심이 시들해졌다. 그런데, 지난해 이맘때 미국 페이스북사가 리브라(Libra) 프로젝트를 발표하여 관련 업계에 활기가 돌았다. 금년 초 중국인민은행이 블록체인기술에 기반한 CBDC 추진계획도 그런 관점에서 바라본다. 업계 성장의 모멘텀으로 보는 것이다. 민간 기업이건, 중앙은행이건 블록체인기술을 활용한다는 사실을 호재로 받아들인다.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적이지만, CBDC를 바라보는 IT 업계의 자세는 지극히 가치지향적이다.

두 번째 시각은 경제계의 관점이다. 경제계에서는 중국의 CBDC 개발 노력을 미중 무역분쟁 또는 패권다툼의 연장선에서 바라본다. 중국이 CBDC로써 미 달러화의 제국에 도전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CBDC를 향한 중국의 집념은 실로 놀랍다.

중국인민은행은 지금까지 블록체인기술과 관련하여 84개의 특허를 출원했고, 금년 4월부터는 선전, 쑤저우, 슝안신구, 청두 등 4개 지역에서 지급결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맞추어 정식으로 출범하는 것이 목표다. 지금까지 어느 중앙은행도 시도하지 않았던 그 노력이 현실화되면, 중앙은행의 역할은 물론이고 화폐제도와 국제금융질서에 엄청난 변화가 초래될 것이라는 기대와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CBDC 개발노력을 화폐제도와 국제금융질서까지 연결하는 것은 과도한 상상이다. 화폐의 속성으로 볼 때 기술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폐제도에서 중국은 늘 세계를 이끌어 왔다. 강태공이 만든 구부환법은 인류 최초의 화폐법이었으며, 한반도에서도 발굴되는 고대 중국의 화폐 명도전은 서양 화폐의 출현보다 더 빨랐다. 원나라는 인류 최초로 지폐를 만들어 유통시켰다. 중국에서 돌아온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그 종이돈에 관해 설명했으나, 당시 유럽의 독자들은 믿지 않았다. 아무 가치도 없는 종이를 돈으로 쓴다는 것은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중국이 화폐제도에서 서양을 앞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기술이 아니었다. 화폐가 기술의 문제라면, 파피루스를 발명한 이집트에서 종이돈이 나왔어야 했다. 아니면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했을 때 지폐가 보급되어야 했다. 어느 나라에서나 신용카드는 현찰 수요를 크게 낮추었는데, 1940년대 미국에서 그것이 처음 등장했기 때문에 미 달러화의 영향력이 지금처럼 커진 것은 아니다. 종이, 인쇄술, 플라스틱 그 어떤 것도 화폐제도에 의미 있는 충격을 주지 않았다.

화폐의 존립 기반은 국가주권(sovereignty) 또는 법률이다. 그래서 그리스에서는 화폐를 노미스마(nomisma)라고 불렀다. 법률 또는 명령이라는 뜻이다. 강태공의 구부환법은 주나라 황제의 이름으로 법정화폐의 발행과 통용을 강제하는 법률이었다. 고려 말 이성계도 위화도 회군 직후 '화폐는 권력자가 발행하는 것(貨權在上)'이라고 말하고 닥나무로 만든 종이돈을 뿌렸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19세기 독일의 경제학자 게오르그 크나프는 '화폐는 국가의 산물(Money is the creature of the state)'이라고 단언했다. 지금의 국제통화기금(IMF)과 법정화폐는 민간이 아닌 국가가 화폐제도의 중심이라는 사실에 토대를 두고 있다.

결론적으로 블록체인기술을 앞세운 중국인민은행의 CBDC 프로젝트가 화폐제도에는 별로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다. 확실한 효과가 있다면, 지폐와 주화의 제작·운송·보관 비용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중국인민은행이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CBDC를 개발하고 확산하려는 이유는 사실 다른 데 있다고 보인다. 민간기업 알리바바 그룹의 '알리페이'의 시장지배력과 개인정보 종합능력에 위기감을 느껴서 이를 국가가 가져오려는 시도다.

달리 말해서 중국인민은행이 알리페이를 제치고 선불카드 독점사업을 하겠다는 말이다. 이는 한국은행이 선불카드업자들을 밀어내고 충전식 교통카드 사업을 직접 하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중앙은행이 상업은행을 넘어 국민들과 직접 거래한다는 점에서 중앙은행 제도의 후퇴다.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CBDC 발행에 주춤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어느 분야에서나 역사와 현실, 그리고 미래를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기술은 기술이고, 화폐는 화폐다. 중국의 디지털화폐 개발 노력도 그런 의연한 자세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중국 옆의 대한민국이 기죽지 않고 살아가는 지혜다. 지난 5천년을 그렇게 해 왔듯이. (차현진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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