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부동산으로 온 나라가 들썩인다. 전대미문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경제에 큰 충격이 가해져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집 사겠다는 심리가 커진다. 경기가 나빠지면 부동산 투자 심리가 위축되기 마련인데 거의 제로(0) 수준으로 내려간 금리와 각종 유동성 지원 정책이 어우러져 뜻밖의 부작용을 냈다. 여기에 다주택자인 고위공직자들의 '똘똘한 한 채' 전략이 되려 인기 지역 아파트의 중요성을 더 부각해줬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생필품 사재기가 없는 유일한 나라로 알려졌지만, 부동산만은 예외였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굳건한 믿음이다. 사두면 배신하지 않는다는 '불패 신화'의 상징이며 최근에는 젊은 연예인이 성공했음을 증명하는 '플렉스' 문화의 끝판왕이다. 그래서 부동산과 전쟁을 벌이려면 사람들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은 일종의 '신념'과 싸워야 한다.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오랫동안 이 믿음을 외면하던 사람마저 이제 넘어가고 있다. 또 코로나19의 2차 확산 우려, 미국 대선과 미·중 갈등, 북한과 관계 악화, 인구 감소 속 심화되는 고령화와 양극화 등의 불확실성이 도처에 자리 잡으면서 확실한 것, 안정적인 것을 찾으려는 불안한 심리가 더 커져서다.



현재 부동산 가격 추세를 되돌리겠다고 하면 이런 신념을 당장 꺾을 수 있는가부터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과거 정부는 시장 가격을 인위적으로 되돌리려고 하다가 실패를 경험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난 90년대 외환위기를 맞아 환율시장에서 쓰라린 경험을 했으며, 이전에는 종합주가지수도 정부의 관리 대상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후 시장을 개방하고 투명성을 높이면서 정부는 이제 직접 개입을 최대한 줄이고, 유도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장의 가격 결정 기능을 최대한 살리고 존중하는 태도를 취해오고 있다. 영원히 한 쪽으로만 가는 가격은 없기 때문이다. 시장 여건과 상황, 수급변화에 따라 가격은 오르락내리락한다.



관건은 비싼 아파트를 갖고 있지 않으면 자식한테 아무것도 물려줄 게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다. 또 소규모 개방 경제를 가진 국가라 불가항력적인 요소가 적지 않지만 불안을 유발하는 여러 요인을 완화하는 정책을 정부가 계속 내놔야 한다. 결정적으로는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불로소득이 없어도 노후가 안정적이고, 일한 만큼 근로소득으로 누리고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조성된다면 막연한 '사재기' 심리만큼은 다독여주는 효과가 클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사회 복지안전망은 물론 국민연금 기금과 제도의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운영은 필수다. 사회에 오랫동안 박힌 신념을 바꾸는 일은 신중하고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3천조원에 달하는 시중 유동성이 생산적 투자에 유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한국판 뉴딜과 증시 활성화 등을 내세운 것은 바람직하다. 특히 한국 경제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필요한 설비투자가 부진해 고전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은 최근 10년간 경제 규모 대비 설비투자 비중의 연평균 감소 폭이 주요국 대비 가장 큰 국가다. 일례로 부동산보다 내 돈이 기업으로 유입돼 알찬 과실을 거뒀다고 '플렉스'하는 문화가 확산하길 바란다. 미국에서 주식으로 큰돈 번 투자자를 '구루'라고 칭송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런 존경의 표시를 찾기 어렵다. 사회 분위기와 문화가 바꿔야 한다. (자본시장·자산운용부장 이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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