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한국은행, 집단지성의 힘을 믿어라
[현장에서] 한국은행, 집단지성의 힘을 믿어라
  • 전소영 기자
  • 승인 2020.08.1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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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한국 경제가 가보지 않은 길 한 가운데 서 있다.

한국은행이 사상 최저 수준인 0.5%까지 기준금리를 인하했고 정부는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이어 유례없는 4차 추경편성도 거론하고 있다.

실물 경제를 지원하려고 정부와 한은이 유동성을 대거 풀었지만, 자산가격 폭등으로 연결되면서 이들의 당혹스러움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사흘이 멀다고 고강도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유동성은 이를 비웃듯이 날개를 달고 있다.

한은은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이라는 두 가지 책무를 갖고 있다.

한은은 경제 환경의 구조적 변화 등으로 수년째 물가안정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금융 불균형 해소라는 막중한 과제도 남아 있다. 저금리 기조 지속에 시중 유동성이 부동산과 주식으로 대거 유입됐고, 이는 금융 시스템의 불안 요인이 됐다.

한은도 할 말이 있다. 인플레이션은 공급측 요인과 정부의 복지정책 등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주택가격 역시 정부 정책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거시건전성 정책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한은의 주장에 틀린 것은 없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방어적인 논리로 무장하기에는 한국 경제를 둘러싼 환경이 너무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코로나발 경제 파장 이후 한은 내부 게시판에 국장급 간부가 올렸던 글 몇 개가 삭제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 한은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주장,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한 아이디어 차원의 글이었다. (연합인포맥스가 12일 오전 8시50분에 송고한 '한은 지역본부장의 정책 제언…"통안채 활용 QE로 금리인상 명분 마련"' 기사 참조.)

다양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제시할 수 있는 환경은 업무에 매우 중요하다. 기업들은 너도나도 유연한 조직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직함을 없애기도 하고 애자일(Agile) 조직을 시도하는 등 애를 쓰고 있다.

한은도 최근 'BOK 2030'을 통해 한은의 중장기 발전전략을 공표했다. 통화정책 운영체계 개선 추진부터 중장기 경영 인사 혁신까지 사실상 '한국은행' 이름 빼고 다 바꾸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 거창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부터 바뀌어야 한다. 국장급 간부들이 올린 정책제언이 며칠 만에 게시판에서 삭제되는 일이 잦아지면 다른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물론 총재와 금융통화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원 보이스(One Voice)'는 중요하다. 하지만 최선의 선택을 도출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아이디어와 충분한 토론이 선행되지 않은 '원 보이스'는 그저 소수의 의견일 수 있다.

한국은행이 코로나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는 호평이 자자하다. 하지만 할 일을 다 했다고 안주할 수 없다. 한국은 가보지 않은 길 한 가운데 서 있고, 그 중앙에 한국은행이 깃발을 들고 있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경제학 분야 최고의 엘리트 2천여명을 보유한 한국은행의 집단지성을 극대화한다면, 가보지 않은 안갯속에서도 길을 찾아가리라 믿는다. (금융시장부 전소영 차장대우)

syje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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