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뒤에 숨는 은행…금융감독원의 '속앓이'
이사회 뒤에 숨는 은행…금융감독원의 '속앓이'
  • 정지서 기자
  • 승인 2020.08.1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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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사모펀드·배당' 연이은 이슈에 '강제조치' 언급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금융감독원이 분쟁조정위원회의 실효성을 제고할 카드로 '편면적 구속력'을 꺼냈다. 또 특수한 상황에서는 금융회사의 '배당 제한'이 가능한 제도를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금감원이 강제성과 구속력 있는 수단을 동원하고 나선 것은 그간 설득과 권고가 주를 이룬 소통방식에 한계를 느껴서다.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의 제왕적 리더십을 견제하고자 이사회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지만, 정작 지금은 그 이사회가 CEO의 대승적인 판단을 가로막고 있다는 게 금감원의 판단이다.

금감원의 이런 강공을 반가워할 곳은 없다. 금융권에서는 금감원의 뒤늦은 영(令) 세우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 키코 이어 사모펀드도…은행장도 "사외이사 설득 어렵다"

"당국과 이사회 사이에서 눈치가 보인다. 시대적 흐름을 반영해 소비자 보호를 경영 판단의 최우선으로 내세우고 싶지만, 사외이사를 설득하기가 녹록지 않다"

시중은행의 한 은행장은 13일 부실 사모펀드 배상을 두고 가장 어려운 일로 이사회와의 이견 조율을 꼽았다.

과거 거수기 비난이 따라다니던 이사회가 달라졌다.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을 이유로 금감원이 사외이사의 독립성과 책임 인식을 강조하자 이사회에 힘이 실렸다.

그런 이사회가 최근에는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에 이어 라임펀드 배상 이슈에서 금감원과 각을 세우고 있다.

이사회가 소비자 보호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중시하면서도 분조위의 결정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배임 논란 때문이다.

특히 라임자산운용 플루토 TF-1호(무역금융펀드)는 분조위가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적용해 투자금 전액 배상을 결정한 첫 사례다. 금융투자상품을 매개로 한 사적 계약에 배상 비율 100%는 자칫 잘못된 선례가 될 수 있어서다.

한 사외이사는 "소비자 보호라는 의제를 반대할 이사회는 없다. 그러나 키코 등 최근의 배상 이슈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라며 "시간에 따라 경영 판단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다. 이제는 사외이사도 배임죄로 처벌받는 시대"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금융회사 사외이사의 경영판단에 대한 배임 논란이 불거진 건 대우채 사태 정도다. 당국에선 이사회의 이런 입장에 지나친 보신주의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윤석헌 금감원장은 분조위 결정에 거부권을 내세울 수 없도록 편면적 구속력을 언급하고 나섰다. 이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논의됐지만 반영되진 못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일 2천만원 이내 소액분쟁 사건에 편면적 구속력을 적용하는 금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영국과 호주, 일본은 이미 소비자 보호 방안의 하나로 편면적 구속력을 활용하고 있다.

금융권은 반발하고 있다. 키코에 이어 사모펀드까지 분조위 결정이 연이어 거절되자 실추된 감독당국의 체면을 살리기 위한 조치라는 비난이 거세다.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사모펀드 이슈를 확대해 배상을 압박하는 카드라는 해석도 있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등 라임자산운용 무역금융펀드 판매사 4곳은 이달 27일까지 분조위가 권고한 원금 전액반환 결정 수용 여부를 확정해야 한다. 이들 판매사는 지난달 말까지 수용 여부를 확정해야 했으나 답변기한을 한차례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금감원 분조위가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에 대한 자율 배상안을 권고했을 때도 씨티·산업·신한·하나·대구은행은 수차례 답변을 연기하다가 결국은 권고안을 거절했다.

◇ 씨티부터 하나까지…되풀이되는 배당 딜레마

금감원이 매년 되풀이되는 배당 논란에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배당 제한의 계기는 외국계 은행이었다.

윤 원장은 지난해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한국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의 배당 수준이 과도하다고 평가했다. 연간 당기순이익을 초과하는 수준의 배당지급은 지나친 국부유출이란 논리에서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배당에 대한 규제 정책을 두고 있다. 호주는 은행이 당기순이익을 초과하는 배당을 할 경우 감독당국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상법상 배당 가능 이익에 대한 규정만 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금융지주의 배당이 도마 위에 올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은행의 손실흡수능력 강화를 강조해온 금융당국 수장들은 금융지주에 올해 배당을 자제해 줄 것을 수차례 당부했다.

하지만 하나금융 이사회는 지난달 23일 주당 500원의 중간배당을 의결했다. 배당 규모도 평년 수준을 유지했다.

시장에서는 당국의 배당 자제 요청에 따라 하나금융이 중간배당 규모를 줄일 것으로 봤다. 하지만 예상을 넘어선 이사회의 결정에 외국인 투자자가 돌아왔다. 하나금융은 중간배당 이후 15%가량 주가가 올랐다.

하나금융의 선택은 다른 금융지주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의 배당 자제 권고에 기말배당 규모를 고심하던 금융지주들은 하나금융의 중간배당 강행으로 다소 여유가 생겼다.

배당은 금융회사의 자율적인 재무판단 영역이다. 나아가 금융회사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주주와의 약속이기도 하다.

하지만 코로나19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시스템리스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체다. 금융당국이 지난 2016년부터 시스템적 중요은행·은행지주회사(D-SIB·Domestic Systemically Important Banks)를 선정해 관리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한 금융지주 임원은 "당국의 구두지침을 법처럼 따랐던 과거와 지금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이사회의 방향성이 경영진보다 앞설 때도 있다"며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며 달라진 금감원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jsje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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