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26일 정몽규 HDC그룹 회장을 만나 "모든 가능성을 열고 재협의하겠다"고 파격 제안한 것은 인수조건을 양보하더라도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로 표현된다.

더불어 정 회장의 의지를 확인하는 동시에 딜 지속 책임을 HDC현산 측에 넘긴 것이기도 하다.

27일 채권단 및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 회장과 정 회장은 전일 오후 여의도 산은 본점에서 만나 한 시간 넘게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재협의 조건을 먼저 꺼낸 건 이 회장이었다.

이 회장은 정 회장에게 HDC현산의 인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채권단이 할 수 있는 몇 가지를 예를 들어 설명했다.

그는 영구채 추가 인수 등을 통한 자본 확충, 아시아나항공 경영정상화에 필요한 자금의 절반을 추가 지원하는 방안, 아시아나항공 유상증자 참여,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마무리된 이후에도 영구채 8천억원을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는 조건 등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계약 조건보다 최대 1조원 이상 부담을 줄여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길을 열어주겠다는 얘기다.

HDC현산은 지난해 12월 대주주인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구주 30.77%를 3천228억원 인수하고 유상증자를 통해 2조1천772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하는 등 2조5천억원을 인수대금으로 제시했다.

이 회장은 정 회장에게 "지금 제안한 이 방안은 채권단이 검토한 일부일 뿐 HDC현산 측에서 요구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모든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들어주겠다"고 했다.

HDC현산이 원하는 조건을 들어줄 자세가 되어 있으니 구체적인 요구사안을 제시해 달라는 얘기다.

이 회장이 그동안 HDC현산 측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해 온 만큼 정 회장 입장에선 다소 파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제안이다.

정 회장은 이 자리에서 즉답은 하지 않았다.

산은은 회동 후 짧은 보도자료를 통해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의 원만한 종결을 위해 인수 조건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며 "HDC현산 측의 답변을 기다릴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공을 HDC현산 측에 넘겼다는 의미다.

시장에서는 이 회장이 인수조건을 양보하면서까지 파격 조건을 제시한 건 딜 성사 여부에 대한 최종 책임을 HDC현산 측으로 넘기려는 전략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동안 양측이 아시아나항공 매각 무산 시 2천500억원의 계약금 환급 소송에 대비해 치열한 책임 공방을 벌여왔다.

이 회장 입장에선 정 회장이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성공시킬 수 있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무산 책임을 HDC현산 측으로 돌릴 수 있다.

공을 다시 받은 정 회장은 고민에 빠졌다.

그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자금부담 등을 인수 조건을 재검토하자고 주장했던 만큼 1조원 이상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이 회장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도, 거절하기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 회장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결국 자금부담은 핑계일 뿐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진정성이 없었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꼴이 된다"면서 "정 회장이 이달 안에 결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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