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진 대로 지난 8월 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통화정책운용방식을 바꿨다. 인플레이션이 2%를 초과하더라도 당장 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장기간에 걸쳐 제로금리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평균물가목표방식(AIT, average inflation targeting)을 채택했다.

미 연준은 매년 1월 '장기 목표와 통화정책 전략(Longer-Run Goals and Monetary Policy Strategy)'이란 이름으로 정책기조의 변경 여부를 발표해 왔다. 그런데 금년에는 발표를 늦췄다가 8월에 이르러서야 발표했다. 이렇게 시간이 걸린 데는 사정이 있었다.

미 연준은 지난해 2분기부터 운용방식 변경을 고민했다. 금리인하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던 파월 의장을 향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해임 가능성까지 거론하던 무렵이다. 화들짝 놀란 파월 의장은 금리인하를 서두르면서 장차 시행될 초완화적 통화정책의 근거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지난해 7월부터 다섯 번에 걸쳐서 10개의 특별 보고서들을 검토했다. 거기에는 제로금리, 자산매입, 포워드가이던스, 수익률곡선 관리 등 연준이 지난 10년 간 취해왔던 여러 가지 정책수단들의 효과와 한계, 개선방안들이 망라되었다. 연준과 비슷한 정책을 실시했던 유로지역, 영국, 일본은 물론 체코의 경험까지 포함됐다.

토론을 위해 작성된 그 특별보고서에 결론이 담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평균물가목표방식을 따를 경우 제로금리 유지 기간이 2024년 말까지 최소한 1년 이상 연장되고 실업률도 유의하게 더 낮아진다는 실증분석이 제시되었다. 그것을 확인한 파월 의장은 평균물가목표방식의 선언과 함께 그 근거인 10개 보고서도 자랑스럽게 공개했다.
 

 

 

 


하지만 평균물가목표방식에는 논리적 결함이 너무 많다. 물가가 장기 균형수준인 2%를 초과했는데도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면, 노동시장에 초과수요 압력이 커지는 것이 명약관화다. 그것이 대수롭지 않다고 주장하려면 물가와 실업률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필립스곡선의 유의성을 부정해야 한다. 필립스곡선이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평탄해졌지만 아직까지 그 유의성까지 의심받지는 않는다. 필립스곡선의 유의성을 부정하다 보면, 연준의 또 다른 목표인 고용 극대화가 통화정책과 무관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자가당착이다.

굳이 필립스곡선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평균물가목표방식은 2012년 1월 버냉키 의장이 발표했던 기존의 물가목표방식(IT)보다 열등하다. 평균(average)의 개념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이 일정기간에 걸쳐 평균 2%라는 말은 과거 2%를 밑돌았던 만큼 앞으로는 2%를 초과한다는 말이다. 중앙은행의 금리결정과 경제주체들의 기대에서 과거가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것은 중대한 오류다. 경제학의 제1원리는 과거와 단절하는 것이다. 미시경제학 교과서는 평균비용이 아니라 한계비용(기회비용)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평균비용은 과거의 산물이고 한계비용은 현재의 산물이다. 평균을 생각하는 순간 과거의 유령에게 지배당한다.

거시경제학 교과서에서도 경제주체들의 기대형성에 과거라는 노이즈가 작동하면 정책효과가 불확실해진다고 가르친다. 그것을 부호추출문제(signal extraction problem)라고 한다. 199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루카스 교수가 40년 전에 내린 결론이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이 월평균 콜금리 수준을 연 0.5%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첫 15일 간 평균이 0.3%였다고 하자. 그러면 나머지 15일 간 평균은 0.7%일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된다. 그것은 한국은행의 의도와는 다르고, 통화정책에 교란이 생긴다.

그래서 2008년 초 한국은행은 정책결정의 잣대를 바꿨다. 월평균 콜금리에서 한국은행의 RP거래 실행금리(기준금리)로 변경했다. (그 변경은 부호추출문제를 지적한 필자의 2003년 논문이 계기가 되었다. 이 논문은 내부에서 발표 기회가 차단되면서 금융연구원의 학술지 '한국경제의 분석' 제9권 제3호로 세상에 공개되었다.)

미국의 평균물가목표방식도 마찬가지다. 일부 학자들이 그것을 옹호하는 논문을 발표했지만, 한계가 있다. 가계의 소비와 기업의 투자가 과거의 평균물가수준에 영향을 받는 경로를 고려한 논문은 찾기 어렵다.

평균물가목표방식은 금리를 더 낮출 수도,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더 높일 수도 없는 연준이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자기변명이다. 만일 한국은행이 주최하는 통화정책경시대회에서 대학생들이 그런 해법을 내놓는다면 낙방하기 십상이다. 연준은 차라리 가만히 있는 편이 나았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Whereof one cannot speak, thereof he must be silent)'고 하지 않았던가.

◇사족 : 한국은행과 언론에서는 인플레이션 타깃팅(inflation targeting)을 물가(안정)목표제도라고 번역하지만 이 글에서는 물가목표방식이라고 했다. 인플레이션 타깃팅은 규범이 아닌 스타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제도라는 말은 아무 데나 붙이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찍먹'과 '부먹'은 탕수육을 먹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찍먹제도', '부먹제도'라고 하면 얼마나 우스운가. 스타일의 하나인 파마 머리나 양념치킨을 '파마제도'니, '양념치킨제도'라고 하면 얼마나 황당한가.

말은 생각을 지배한다. 방식(스타일)은 언제라도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을, 제도는 웬만해서는 고칠 수 없다는 생각을 만든다. 인플레이션 타깃팅을 물가안정목표제도라고 부르는 순간, 웬만하면 손볼 수 없다는 생각에 빠진다.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 타깃팅을 심지어 체제(regime)라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타깃팅은 얼마든지 손볼 수 있는, 스타일과 방식 문제다. 연준이 이번에 그것을 보여줬다.

한국은행이 취하고 있는 물가안정목표방식은 한때의 스타일이요, 선택이자 유행이다. 언제든지 변형이 가능하다. 통화정책의 유연성은 바로 그런 생각에서 출발한다. 17년 전 필자가 논문에서 했던 말이다. (더 이상의 내용은 필자의 졸작 '법으로 본 한국은행'을 참조하라.)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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