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국의 가계부채가 빛의 속도로 늘어나면서 여기저기에서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기)'과 '빚투(빚내서 투자)'가 일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금융권에서 낮은 금리로 신용대출을 받아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들이 늘어난 결과다. 최근 치솟는 부동산 가격과 이에 따른 정부의 강도 높은 주택담보대출 규제도 가계의 신용대출 증가를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달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가계신용을 보면 우리나라의 가계신용잔액은 2분기 말 현재 1천637조3천억원을 기록했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보험사·대부업체·공적 금융기관 등에서 받은 대출에 결제 전 카드사용액(판매신용)을 더한 포괄적인 가계부채다. 특히, 가계신용은 2분기에만 25조9천억원 늘었다. 지난해 2분기 말보다 80조5천억원(5.2%)나 증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 등으로 가계소득이 역성장하는 가운데 가계부채만 늘어나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주춤한 가운데 신용대출 증가세가 더욱 뚜렷해졌다. 실제로 지난달 국내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잔액은 4조755억원이나 늘었다. 월간 신용대출 증가폭으로는 역대 최대 수준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서 보다 높은 수익을 제공하는 상품에 투자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이는 해외의 저금리 통화로 자금을 타입해 고금리 통화에 투자해 금리차익을 얻는 금리재정거래와도 닮았다. 세계적으로 넘치는 유동성으로 부동산과 주식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자금이 부족한 개인 투자자들이 차입을 통해 투자하는 걸 마냥 비난하기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러한 투자행태는 금융시장이 당초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움직일 경우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다. 궁극적으로 자산가격이 실물경제와 완전히 따로 움직이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때, 향후 자산가격 조정시 빚내서 투자하는 행위는 위험성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지난 1998년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는 과도한 외화차입과 같은 신용과잉에서 촉발됐고,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국내외 투자자들의 과도한 금리재정거래는 자산가격 하락과 맞물려 '디레버리지'를 증폭시켜 금융불안을 한층 가중시켰다. 또 지난 2003년 우리나라를 힘들게 만들었던 카드 사태도 실질소득이 동반되지 않는 상황에서, 미래의 신용을 현재의 현금처럼 무분별하게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가계부채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유독 부채 이슈에 둔감한 것은 단기적인 성과 위주의 정책과도 무관하지 않다. 가계부채가 문제가 될 때만 총량이나 증가율 등을 관리하다가도, 실물경제가 조금만 나빠지면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을 총동원해 금리를 내리고 돈부터 푸는 전통적인 경기부양책에 너무 익숙한 게 사실이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에 따른 내수 부진이 통화당국과 금융당국의 시중 유동성 관리에 발목을 잡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가파른 가계부채 증가는 궁극적으로 금융 부문을 취약하게 만들고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에도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 자칫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다가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신용 과잉이 새로운 거품을 만들고 또 다른 경제 위기로 번지게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정책금융부장 황병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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