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LG화학의 5조원짜리 수업료
[데스크 칼럼] LG화학의 5조원짜리 수업료
  • 고유권 기자
  • 승인 2020.09.2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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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LG화학은 자타공인 국내 1위의 화학업체다. LG그룹의 모태인 락희화학공업사로부터 시작한 LG화학은 우리나라 화학산업의 역사이기도 하다. LG그룹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는 데 LG화학의 역할은 상당했다. 그룹의 새로운 사업은 항상 LG화학에서 출발했고, 그 성과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LG그룹의 '도전 정신'은 LG화학에서 시작되고 확산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LG화학이 또 한 번의 변신을 꾀한다. 배터리 사업을 떼어내 12월에 LG에너지솔루션이란 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1992년 고(故) 구본무 회장이 영국 출장길에서 가져온 2차전지 샘플로 개발에 나선 지 28년 만에 독립된 회사로 거듭난다. 배터리는 반도체와 함께 미래를 책임질 핵심 소재다. 석유와 철(鐵)이 산업의 중추였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디지털과 친환경 에너지가 새로운 시대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반도체는 디지털을, 배터리는 에너지를 가둬두는 핵심이다. LG화학은 반세기도 안 돼 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높은 배터리를 만드는 곳이 됐다.

배터리 시장의 최대 고객은 완성차 업체다. 전 세계 완성차 업체들은 내연 기관차를 전기차로 전환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한번 충전으로 더 많이 갈 수 있게 하는 고용량 배터리를 탑재하는 게 완성차 업체들엔 최대의 과제가 되고 있다. 2025년 전 세계 배터리 시장 규모는 1천600억달러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를 뛰어넘는 규모다. LG화학은 올해 들어 중국의 CATL을 제치고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1위 자리에 올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차 판매가 줄면서 전기차 배터리 에너지 총량이 감소하는 가운데서도 LG화학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테슬라는 물론 현대자동차, 폴크스바겐, BMW, 제너럴모터스(GM), 벤츠, 포르쉐, 포드 등을 고객사로 둔 LG화학의 수주 잔량은 150조원에 이른다.

시장은 점점 기하급수로 확대되는데 현재의 사업구조로는 감당이 안 됐을 것이다. LG화학 전체 매출에서 배터리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7% 정도다. 하지만 투자 수요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데 흑자를 내기는 쉽지 않았다. 수주 규모가 급증하면서 매년 3조원 이상 투자를 해야 하는데 정작 그 돈은 석유화학 등 알짜 사업이 댔다.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라고는 하지만 회사 전체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 돌파구가 필요한 건 분명해 보였다.

사실 LG화학이 배터리 사업 분리를 검토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금부터 10년 전인 2010년 초반에도 배터리 사업 분할에 대한 얘기들이 흘러나오곤 했다. 검토만 하던 상황에서 배터리 시장이 급성장하는 현재가 바로 적기라고 판단한 것이다. 전기차 선두주자인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배터리 데이' 행사를 하루 앞둔 21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 스스로 행동에 나서지 않을 경우 배터리 공급사들이 최대한의 속도를 내더라도 2022년 이후에는 중대한 물량 부족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스스로 배터리 생산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한 말처럼 보이지만 현재 배터리 시장의 공급·수요가 매우 불균형한 상태에 놓여 있음을 지적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한 점에서 LG화학이 배터리 사업을 분할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LG화학의 그러한 결정에 분노한다. LG화학이 추구하는 미래 전략 때문은 아니다. 분할 방식 때문이다. LG화학은 기존 주주가 신설법인의 주식을 가져갈 수 있는 인적분할이 아닌 100% 자회사 형태로 소유하는 물적 분할을 선택했다. 결국 배터리 사업의 성장성을 보고 돈을 댄 투자자들은 새로 설립되는 LG에너지솔루션 주식을 단 한 주도 손에 쥐지 못한다.

LG화학이 배터리 사업을 분사하는 이유 중 중요한 포인트가 투자금 확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물적 분할은 효율적이다. 사실 인적분할을 할 경우 LG화학이 상장사이기 때문에 신설회사는 변경 상장 절차를 거치면 상장사로서 즉시 거래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투자금 확보를 위해서는 자본확충에 나서야 하는데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 희석은 불가피하다. ㈜LG가 보유한 LG화학 지분은 30.06%에 불과하다. 인적분할 뒤 유상증자를 한다면 지분율은 30%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

물적 분할로 LG화학이 LG에너지솔루션의 지분을 100% 보유하게 되면 기업공개(IPO)를 통해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배터리 사업 자체를 새 성장 사업으로 키우기 위한 고려 속에 분할을 추진하는 것이라면 굳이 효율성이 떨어지는 인적분할에 나설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지분을 30%만 가지고 투자자를 끌어모으는 것보다는 100%를 쥐고 새로운 시도에 나서는 것이 훨씬 경제적일 수 있다. 상당 규모의 투자를 이끌어 배터리 사업을 더 키운다면 LG화학 주주들에게도 나쁘지 않다. 그래서 LG화학의 이번 결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의사 결정 과정에서 보여준 LG화학의 행태는 참 서툴러 보인다. 작은 소통이 내 편을 만드는 법인데 그러질 못했다. 세상에 선의의 투자란 없다. 미리부터 손해를 예상하고 투자를 하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투자는 미래에 대한 기대다. 물론 미래 예측이 어긋나면 전적으로 그 책임은 투자자가 진다. 기대와 함께 위험이 동반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하지만 투자가 투기와 다른 것은 예측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다는 점이다. 개인투자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기업(주식)에 투자하는 것도 그런 점을 고려한 측면이 있다. 속된 말로 증시에 상장돼 '공인된' 대기업이 나를 속일 것이란 걱정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터리를 보고 투자했더니 너희(LG그룹)만 다 해 먹느냐는 분노가 나옴 직하다. 오해와 불신은 불식시켜야 한다. 그 책임은 LG화학에 있다. 51조원에 달했던 시가총액 중 5조원이 며칠 만에 날아간 것을 간단하게 보면 안 된다. 비싼 수업료는 한번으로 족하다.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pisces73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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