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채 2주도 안 남았다. 잘 알려진 대로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슬로건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다. 40년 전인 1980년 레이건 후보가 썼던 것과 같다.

민주당 바이든 후보의 슬로건은 BBB 즉, '기본부터 바로잡자(Build Back Better)'다. 이것 역시 독창적이지 않다. BBB는 2015년 개최된 유엔 방재콘퍼런스의 슬로건이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자연재해와 기상이변의 원인이 기본을 외면한 데 있다는 각성에서 나온 말이다.

BBB는 환경뿐 아니라 금융 분야에도 적용된다. 지금 금융업은 거대한 변화를 겪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블록체인기술을 포함한 새로운 IT 기술들이 눈부시게 진보하고, 신생 핀테크 업체와 유니콘 기업들이 금융업으로 밀려오고 있다. 이럴 때 기본을 잘 지키지 않으면, 혼란과 표류가 찾아온다. 그런데 디지털금융을 총괄하는 금융위원회가 그렇지 않아서 안타깝다.

이번 정부가 출범할 때 금융위는 공인인증서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금융위 주도로 국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든 공인인증서는 어느 때부터인가 '공적 1호'가 되었다. 그래서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는 공인인증서 폐지를 공약으로 삼았다.

그런 씁쓸한 경험 때문에 금융위는 '국민의 편의증진'에 상당히 민감하다. 지난 7월 발표한 '디지털금융 종합혁신방안'에서도 국민의 편의증진을 과도하리만큼 강조했다. 그러는 바람에 기본을 잊었다.

예를 들어 금융위는 국민의 편의증진을 위해 선불카드업자에게 후불 서비스 기능까지 부여하려고 한다. 후불 서비스는 이미 지나치리만큼 충분하다는 것을 잊은 것이다.

후불 서비스의 대표는 신용카드이고, 우리나라의 신용카드 이용도(명목GDP 대비)는 압도적인 세계 1위이다. 중국도 좇아오지 못한다. 그로 인해 2003~4년에는 신용카드 대란까지 겪었다. 그런데도 후불 서비스를 확장하겠다니 '너무 과한데 만족을 모르는(Too Much and Never Enough)'이라는 책(트럼프 대통령 평전)이 떠오른다.

지금 금융위의 가장 큰 목표는 중국의 알리페이에 버금가는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을 육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네이버나 카카오와 같은 거대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종합지급결제업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금융업을 영위토록 하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이 사업권을 얻는 순간 자본금 200억원짜리 인터넷전문은행이 신설되는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기존 유니콘들에게 특혜를 주는 것은, 새로운 유니콘의 출현을 돕는 것과 전혀 다르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큰일 난다. 국내 유니콘에게 지급결제업무의 특혜를 주는 순간 삼성전자(제조), SK텔레콤(통신), 구글(검색엔진), 아마존(전자상거래) 등 국내외의 다른 초대형기업들도 똑같은 혜택을 요구하며 국내 금융업에 뛰어들 것이다. 그 결과는 우선 지급결제시장의 독과점구조 고착으로 나타날 것이다. 금융위는 그런 일을 바라는 것일까.

정부 전체를 보더라도 손발이 맞지 않는다. 지금 공정위는 소위 '플랫폼 공룡'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중이다. 갑질 논란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쪽에서는 금융위가 종합지급결제사업까지 신설해 가면서 플랫폼 공룡들에게 멍석을 깔아주려고 한다. 도대체 이 정부 안에 컨트롤타워가 있는지 걱정스럽다.

오픈뱅킹을 추구하는 방식도 옳지 않다. 오늘날 오픈뱅킹은 세계적인 추세다. 그것이 발전할수록 지급결제 서비스 제공업체가 많아지므로 금융소비자의 편의는 커지고, 가격은 낮아진다. 그러나 오픈뱅킹은 금융위가 행정력으로 강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픈뱅킹의 핵심인 전자금융공동망이 사유재산이기 때문이다.

전자금융공동망은 한국은행과 상업은행들이 공동으로 구축한 회원 간 통신망이다. 그것이 안전하게 관리되지 않으면, 회원 즉 그 재산의 주인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본다. (개인 소유의 산에 아무나 들어갔다가 산불이 나는 경우를 생각해 보라) 정부는 어떤 피해도 보지 않는다. 피해자에게 보상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전자금융공동망의 접속범위 확대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의 소지가 크다.

금융위는 전자금융공동망의 공공재적 속성을 앞세워 이를 규율하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자금융공동망 관리를 위한 자율규약도 법적 근거다. 지급결제 분야의 국제표준을 정하는 CPMI(BIS 산하 위원회)는 자율규약을 행정법으로 바꾸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굳이 오픈뱅킹에 관한 사항을 법률에 담아야 한다면 전자금융거래법이 아닌 한국은행법에 담는 것이 순리다. 전자금융공동망이 존재하는 이유는 최종적으로 한국은행에 예치된 지급준비금의 조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급준비금의 근거는 한국은행법이다. 그런 점에서 금융위의 '디지털금융 종합혁신방안'은 번지수가 틀렸다.

결론적으로 금융위가 만든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철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설익은 생각들로 가득 찬 법률 개정안은 디지털금융을 혼란에 빠뜨리고 마침내 표류시킬 것이다. 디지털금융의 거대한 물결 앞에서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 전에 BBB, 즉 '기본부터 바로잡자(Build Back Better)'는 겸허한 자세부터 가다듬어야 한다.

◇ 덧붙이는 글: 국내외 여러 법과 비교할 때 한국은행법은 유난히 부족함이 많은 법률이다. 특히 지급결제에 관해서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결함이 많다. 한국은행법이 은행법보다 먼저 만들어진 탓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은행법에서 중앙은행법이 진화했다. 한국은행법의 소관부처는 기획재정부이다. 한국은행법의 개선 방향에 관해서는 필자의 '법으로 본 한국은행'(2020년)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노미스마(nomisma)'는 그리스어로 화폐와 명령(법)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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