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권용욱 기자 = "채권시장에 새로운 고릴라가 나타났다."

유럽연합(EU)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구제 자금 마련을 위한 '팬데믹 본드'를 성황리에 발행하자 뉴욕타임스(NYT)는 22일(현지시간) 이같이 평가했다.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EU는 10년 만기 채권(100억유로)과 20년 만기 채권(70억유로) 총 170억유로를 지난 20일 발행했다. 앞으로 5년간 총 9천억유로 규모 채권 발행의 첫 시작인 셈이다.

EU는 지난 그리스 금융위기 당시 채권시장을 통해 자금을 차입한 적이 있지만 이번과 같은 대형 발행은 처음이다. 지금까지 유럽 국가는 각국 정부가 자체적으로 채권을 발행했었다. 독일과 네덜란드 등은 이탈리아나 포르투갈과 같은 신용등급이 낮은 국가와 채무를 함께 부담하는 데 반대했다.

코로나19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유럽위원회(EC)에 따르면 이번 발행에서 시장의 응찰 수요는 발행액의 13배에 달했다. 10년물에 1천450억유로가 몰렸고, 20년물 수요는 880억유로를 넘어섰다.

유럽은 글로벌 국채시장에서 미국보다 존재감이 떨어지지만, 이번 발행을 계기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채권시장 투자자는 유럽 채권이 제로 금리 수준이라도 기존 미국 국채 외에 새로운 대안에 목말라 있었다.

도이체방크는 보고서를 통해 "채권 투자자들은 미국 정부의 재정 지출 급증과 무역 적자 확대, 금리 하락 등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번 발행에서 최대 매수 세력은 글로벌 중앙은행이었다. 이들은 미국 달러화 대비 지난 몇 달 간 크게 오른 유로화 수요를 맞추기 위해 대규모 매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됐다.

모든 EU 국가가 보증하는 이번 채권은 유럽중앙은행(ECB)의 짐을 덜어주는 측면도 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마찬가지로 ECB도 신규 자금 조달을 위해 공개시장에서 국채를 매입한다. 연준이 미국 국채를 단순히 사들이는 것과 달리 ECB는 유로존 국가들의 국채를 각국 경제 비율에 따라 매입해야만 했다. 기술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간단치 않은 절차다.

이번 채권을 통해 ECB는 보다 간단하면서도 위험 부담이 줄어든 방식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팬데믹 본드의 발행은 영구적이지 않다. 차입한 자금은 각국의 합의에 따라 오는 2026년까지 활용해야 한다. 자금 조달과 사용의 광범위한 권한이 EC에 몰린 것을 유럽 각국이 우려하기도 한다. 권한을 남용해 부유한 국가의 부를 다른 나라로 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역 내 많은 정치권 인사들이 이번 채권 발행을 유럽 통합 강화의 중요한 단계로 보고, EC가 채권시장의 영구적인 플레이어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NYT는 관측했다.

도이체방크는 "이번 발행의 흥행은 유로화에 대한 신뢰의 표시"라며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진화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ywk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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