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부터 이건희까지…역사 뒤안길로 사라진 '재계 1·2세대 총수'
조양호부터 이건희까지…역사 뒤안길로 사라진 '재계 1·2세대 총수'
  • 이윤구 기자
  • 승인 2020.10.2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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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이윤구 기자 = 한국 경제의 기틀을 다진 재계 거목들이 지난해부터 잇달아 유명을 달리하면서 총수 1·2세대 시대가막을 내리고 있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강남구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만이다.

지난해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부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에 이어 올해 들어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이건희 회장이 타계했다.

국내 항공업의 선구자로 평가받았던 조양호 전 회장은 70세의 나이에 갑작스레 별세하면서 한진그룹의 경영권이 장남인 조원태 회장에게 넘어갔다.

조 전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 입사 후 45년간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 업무에 필요한 실무 분야들을 두루 거쳤다. 이후 조 회장은 1992년 대한항공 사장,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1996년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집행위원회 위원과 2014년부터 IATA 전략정책위원회 위원 등을 거치며 국제항공업계에서 한국의 위상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도 받았다.

김우중 전 회장은 만 30세인 1967년 자본금 500만원, 직원 5명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45세 때인 1981년 대우그룹 회장에 오른 이후 세계경영을 기치로 내걸고 그룹을 확장해 1999년 그룹 해체 직전까지 자산규모 기준으로 현대에 이어 국내 2위로 일군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이다.

구자경 전 명예회장은 LG그룹 2대 회장으로 1970년부터 1995년까지 25년간 그룹을 이끌었다. 1987∼1989년 사이에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도 역임했다.

1970년 회장으로 취임할 당시 그룹은 럭키와 금성사, 호남정유 등 8개사에 연간 매출이 270억원이었다.

그러나 고인이 경영에서 물러날 당시 LG는 30여개 계열사에 매출액 38조원의 재계 3위 그룹으로 성장했다.

70세이던 1995년 '21세기를 위해서는 젊고 도전적인 인재들이 그룹을 이끌어나가야 한다'며 장남 구본무 회장에게 그룹을 넘겨줬다.

이에 앞서 2018년에는 구 전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LG그룹의 3대 회장인 고 구본무 회장이 갑작스레 별세하기도 했다.

구본무 전 회장은 1989년 그룹 부회장에 올라 본격적인 책임경영을 시작한 뒤 1995년 50세에 회장이 됐다.

그 해 '럭키금성'에서 'LG'로 CI를 변경했으며 23년간 그룹을 이끌면서 '전자-화학-통신서비스' 3개 핵심 사업군을 구축했다.

또한, 전기차용 배터리 등 자동차부품, 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의 분야에서 미래 먹거리도 발굴했다.

올해 초 타계한 신격호 전 명예회장은 한일 양국에 걸쳐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분야의 대기업을 일궈낸 자수성가형 기업가이다.

고인은 1967년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호텔롯데, 롯데쇼핑, 호남석유화학 등을 잇달아 창업하거나 인수하면서 롯데그룹을 재계 5위의 대기업으로 만들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여주인공 샤롯데처럼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겠다며 사명을 롯데로 지었다.

한국에서는 1959년부터 롯데와 롯데화학공업사를 세워 껌· 캔디·비스킷·빵 등을 생산했고,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인 1967년 4월 자본금 3천만원으로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고인은 지난 1980년대부터 관광보국의 꿈을 가지고 롯데월드타워를 계획했으며, 2017년 4월 123층의 롯데월드타워가 오픈하며 30년 숙원사업을 이뤄내기도 했다.

이날 별세한 이건희 회장은 1970년대 미국 실리콘밸리를 누비며 하이테크 산업 진출을 모색했고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삼성그룹 후계자로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고인은 하이테크 산업 진출만이 살길이라는 확신을 바탕으로 1974년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삼성 반도체 신화'를 잉태시켰다.

1987년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은 후 1993년에 밝힌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신경영 시대를 열었다.

당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경영진을 소집하고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며 고강도 혁신을 주문했다.

메모리 반도체를 포함해 20여개 품목의 글로벌 1위를 일궈내면서 삼성은 이 회장 취임 당시 1조원이던 시가총액이 396조원대로 40배나 커졌다.

매출액은 10조원에서 387조원으로 약 39배, 영업이익은 2천억원에서 72조원으로 259배 증가했다.

한국 경제의 기반을 다진 재계 1·2세대 총수들의 타계 소식이 이어지는 가운데 재계에서도 세대교체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년 만에 그룹 총수가 정몽구 회장에서 장남인 정의선 신임 회장으로 교체됐다.

지난 7월 대장게실염 등으로 입원한 정몽구 회장은 건강을 회복했으며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이날 부친 이건희 회장이 별세한 이재용 부회장은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집단 동일인에 지정되면서 공식적인 삼성그룹의 총수로 자리매김했다.

LG그룹의 경우 구인회 회장과 구자경 회장, 구본무 회장에 이어 구광모 회장이 취임하면서 4세 경영에 들어갔다.

구광모 회장은 구본무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이지만, 2004년 구본무 회장의 양자로 입적하며 일찌감치 LG가의 후계자로 낙점된 바 있다.

yg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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