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재용의 시간
[데스크 칼럼] 이재용의 시간
  • 고유권 기자
  • 승인 2020.11.0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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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2008년 7월 1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서 열린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 6차 속행 공판. "재용이 본인이 능력이 닿아야 하고, 그 능력이 후계자로 적당치 않으면 이어받지 못한다". 경영권 승계 여부를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 대한 고(故) 이건희 회장의 답이었다. 장남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승계 여부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밝힌 사실상의 첫 언급이었다. 승계의 전제조건으로 '능력'을 거론한 것이 원론적인 입장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당시 40세의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에게는 상당한 압박이었을 것이다. 1991년 삼성전자 총무그룹에 입사한 이후 17년 동안 경영수업을 받아왔지만 정작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무언가 부족함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이후 이 부회장의 '방랑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9년 말 정기 임원인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고, 최고운영책임자(COO)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사실상 삼성전자의 실질적 경영자로 전면에 등장한다. 직급은 부사장이었지만 최고경영자(CEO)였던 최지성 사장과 실질적으로 투톱을 이뤘다. 2012년 창립 이후 역대 최대 실적을 거둔 삼성전자는 부회장이란 타이틀을 얹어줬다. 이재용 시대를 재촉하는 시계는 그렇게 점점 빨라졌다.

시간은 흘러 8년이 지나는 사이 삼성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그 변화의 소용돌이 중심에는 늘 이재용 부회장이 자리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와병은 그 단초가 됐고, 이후 벌어진 국정농단 사건은 이 부회장에게 고통의 시작이었다. 삼성 총수 일가 중 처음으로 구속돼 실형까지 살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여파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재판은 끝나지 않았고, 급변하는 경영환경은 엄중한 데다, 사회·경제적으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삼성이 해야 할 일들은 켜켜이 쌓여있다. 고 이건희 회장이 언급한 '능력'을 보여줘야 할 책임은 이제 온전히 이재용 부회장의 몫이 됐다.

'상주'의 역할을 마치고 본업으로 돌아오게 될 이재용 부회장의 첫 메시지는 그래서 중요하다. 자산 800조원, 국내 최대, 글로벌 5대 기업인 삼성그룹을 이끌 적임자인지를 본격적으로 평가받는 시험대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산처럼 쌓여있는 삼성과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과제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를 천명하는 것은 비단 삼성만의 관심사는 아니다. 수십만 명의 삼성 구성원은 물론, 삼성과 사업적으로 연결된 파트너사, 협력사와 함께 삼성의 가치를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 늘 삼성의 제품을 달고 사는 수많은 국민도 이재용의 입을 주목한다. 이 부회장이 싫든 좋든 이제부터 '삼성은 곧 이재용'이다. 이러한 등식은 계속해 그를 쫓아다닐 것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5월 대국민 사과를 통해 "한 차원 더 높게 비약하는 새로운 삼성을 꿈꾸고 있다", "우리 사회가 보다 더 윤택해지도록 하고, 더 많은 분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초격차의 경영성과를 통해 기업가치를 높이고, 사회적 책임과 기여를 다 하겠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도 했다. 불과 6개월이 지난 지금 당시와 달라진 것은 없다. '이건희 시대'가 지고 '이재용의 시간'이 돌아왔을 뿐이다. 하지만 중심축이 바뀌었다는 것은 메시지의 내용도 고도화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대국민 사과문에 담았던 핵심적 내용에 구체적이고 더욱 진정성 있는 무언가를 이 부회장은 다시 담아야 한다.

엄중한 상황에서 최근 불거진 상속세 논란은 사실 좀 어처구니가 없다. 고 이건희 회장이 가진 재산 18조원 중 10조원 이상을 삼성 총수 일가가 상속세로 내야 하는데 과도하다는 논란이다. 일각에서는 삼성의 지배구조 문제와 엮어 원활한 경영승계를 어렵게 할 것이란 걱정까지 곁들인다. 하지만, 과연 이런 논란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득이 될까. 세금 깎아준다고 싫어할 사람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논란이 커질수록 '새로운 삼성'을 꿈꾸겠다는 이 부회장에겐 족쇄만 될 뿐이다. 논란 그 자체가 '이재용 죽이기'다. 이 부회장 스스로도 삼성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논란이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인정한 바 있다. 그러면서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는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 법을 어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고 했다. 뜬금없는 상속세 논란이 이 부회장에게 새로운 시빗거리가 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이 부회장의 첫 메시지는 "법률에 따라 성실하게 납부하겠다"가 돼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한 전도사가 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그동안 경제적 가치만 추구해온 기업에 대한 사회의 일부 부정적 인식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현대차그룹의 수장에 오른 정의선 회장도 취임 메시지에서 "주주가치를 제고하고, 협력업체를 비롯한 사회와 다양한 이웃,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한 사회적 책임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삼성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수많은 탁월한 경영자들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삼성을 응원하고 믿어준 우리 사회가 든든하게 뒤에서 받쳐줬다는 것을 이재용 부회장도 잘 알 것이다. 경쟁사의 총수들처럼 이 부회장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경영자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갔으면 한다. 불법, 편법이라는 꼬리표가 이재용의 시간 속에서는 지워져야 한다. 각종 논란에도 여전히 삼성을 응원하는 국민이 많다. 이 부회장이 구체적 성과와 진정성으로 보답할 때다.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pisces73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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