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아시아나항공의 균등 무상감자 추진을 두고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대주주인 금호산업을 지나치게 배려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균등 감자 시 금호산업 등 최대 주주의 지분율은 그대로 유지되는 등 아시아나항공의 지배구조는 전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산은이 금호산업에 빌려준 돈을 회수하고 향후 아시아나항공으로 인한 손실 부담을 떠안지 않기 위해 대주주의 경영 실패 책임을 묻는 구조조정 원칙을 깼다는 지적도 나온다.

5일 채권단 및 관련 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다음 달 28일 3대 1 비율로 균등 감자를 단행한다.

아시아나항공의 최대 주주를 포함한 모든 주주가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보유 주식이 3분의 1로 줄어든다.

자본금도 그만큼 줄어들지만 감자 차익으로 결손금을 메울 수 있어 회계상의 자본잠식에 빠진 기업들이 손실을 털어내기 위해 사용되는 방식이다.

문제는 감자의 방식이다.

통상 부실기업의 경우 대주주의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 차등감자를 실시한다.

대주주에게 경영 실패의 책임을 묻는 동시에 채권단의 지배력을 높여 기업 경영을 정상화하는 게 목적이다.

2010년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에 돌입했을 당시 채권단은 박삼구 당시 회장 등 지배주주가 보유한 주식을 100대1로, 금호석유화학 등 소액주주와 채권단 지분을 6대1로 차등감자 한 바 있다.

2016년에도 채권단이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2조8천억 원 규모의 자본확충에 나서면서 산은이 등 대주주가 더 높은 비율로 자본금 규모를 줄이는 차등감자를 실시했다.

원칙대로라면 이번에도 대주주인 금호산업과 동일인인 박삼구 전 회장이 더 큰 비율로 감자를 해야 한다.

앞서 채권단이 감자를 검토할 당시 아시아나항공에 수조 원의 국민 혈세가 투입됨에 따라 차등감자를 통해 박 전 회장의 지분을 완전히 소각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균등 감자를 결정하면서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지배구조는 그대로 유지되게 됐다.

균등 감자 후 박 전 회장의 보유주식 수는 1만 주에서 3천333주로 줄지만, 다른 주주들의 주식 수도 같은 비율로 줄어들기 때문에 지분율은 여전히 30.79%로 유지된다.

아시아나항공의 지배구조는 전혀 바뀌지 않는 셈이다.

균등 감자 결정에 대해 아시아나항공은 "대주주 지분은 매각 결정과 동시에 채권은행에 담보로 제공됐고, 2019년 4월 매각 결정 이후 대주주가 회사경영에 전혀 관여하고 있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전했다.

이미 대주주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분율은 큰 의미가 없다는 설명이다.

산은이 아시아나항공의 구조조정 실패 책임을 떠안지 않기 위해 균등 감자를 결정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금호산업의 관계기업인 아시아나항공을 차등감자 할 경우 대주주는 이에 따른 보유 주식 수의 손상 가치를 재무제표에 반영해야 한다.

'금호고속→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으로 이루어진 지배 구조상 연결 실체인 금호고속의 부채비율도 치솟게 되고, 산은이 기간산업안정기금을 통해 지원 예정인 4천억 원도 회수가 불투명해진다.

산은과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의 BIS 자기자본비율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금호산업 보유 아시아나항공 주식과 박삼구 회장 보유 금호고속 보유 주식의 담보가치가 하락하기 때문. 산은 등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이 결정된 2019년 1조6천억원의 자금을 투입하는 대신 이들 주식을 담보로 잡은 바 있다.

차등감자로 이들 주식의 가치가 떨어지면 산은과 수은은 그만큼 충당부채를 쌓아야 한다.

차등감자를 하게 되면 산은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금호산업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주식과 박 전 회장의 금호고속 보유 주식의 담보가치가 더 크게 하락하기 때문에 그만큼 충당부채를 많이 쌓아야 한다.

산은의 BIS비율은 13% 이하로 국내은행 최하위 수준이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지난달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BIS비율 추가 하락을 막기 위해 증자를 통한 자본확충을 정부와 논의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호남 출신인 박 전 회장의 지분율을 유지해주기 위한 정치적인 고려가 개입된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IB 업계 관계자는 "갑자기 균등 감자로 바꾸는 문제를 두고 다른 채권은행들의 반대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일반 소액주주 반발 등 논란이 커지면 감자를 미루고 영구채 발행에 먼저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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