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기간산업안정기금을 통한 정부의 산업 지원 실적이 부진해 서울채권시장에 뜻밖의 호재가 되고 있다.

애초 채권시장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위기에 처한 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의 대규모 기안기금이 풀릴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따라 기안기금채권 발행이 급증해 이미 공급 부담에 시달리는 채권시장에 또 하나의 물량 폭탄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까지의 실적을 보면 이는 기우에 그친 듯 하다.

기안기금의 전체 규모는 40조 원에 달하지만 현재까지 발행된 기안기금채권 금액은 아시아나항공을 지원하기 위해 산업은행이 지난 10월 21일 발행한 2천400억 원이 전부다.

항공 등 기안기금 지원 대상 산업의 상황이 호전돼 기금 신청이 저조했다면 우리나라와 채권시장에 모두 좋은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업의 어려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신청이 부진해 기안기금의 설립 취지만 무색해지고 있다.

기업들이 기금 신청을 꺼리는 이유는 시장대비 이점이 없는 고금리의 대출 부담과 90%의 고용유지라는 정부의 지원 조건 때문이다.

정부는 기간산업에 대한 대출금리를 '시중금리+α'로 하고 있다. 지난 10월 발행된 기안기금채권의 만기는 3년 6개월인데, 3년물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인 'BBB-' 등급의 민간평가사 3사의 책정금리는 7.553%다. 시중금리가 이 정도인데 여기에 '+α'라도 더한다면 안 그래도 위기에 처해 기금을 신청한 기업의 부담은 더 가중된다.

반면 지난 10월 기안기금 채권의 발행 금리는 1.08%였다. 산업은행으로서는 예대마진이 상당한 셈이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기업에 줄 때 7%가 넘는 대출 금리가 적용되는데 시중은행보다 높은 금리를 누가 이용하겠는가'라고 지적한 바도 있다.

90%의 고용유지 조건도 기업의 신청을 꺼리게 하는 요인이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경영진이 임직원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대출 조건에 이를 끼워 넣다 보니 돈을 빌리는 기업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굴레가 됐다.

고용 의무 조건을 기안기금의 고금리 부담과 결합하면 기업이 시중금리 이상의 금리로 빌린 자금으로 직원들에게 월급도 주고 코로나19 상황도 버텨보라는 정부의 메시지가 도출된다. 기안기금의 신청이 부진한 이유다.

기안기금의 실적이 부진해 한 가지 좋은 점은 있다. 내년 173조 원의 국고채 발행 물량 때문에 금리 상승을 우려하고 있는 채권시장에 새로운 채권이 또 대규모로 풀릴 가능성이 줄었다는 사실이다. 어중간하게 설계된 기안기금 덕분에 지원 대상인 기업은 혜택을 누리지 못하지만 시장은 안심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 셈이다.(금융시장부 한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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