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이른바 위험자산 전성시대다. 말 그대로 실체도 없는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2만 달러 선을 상향 돌파했다. 일부 전문가는 비트코인 2만 달러는 이제 미지의 영역으로 시세가 분출하는 출발점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대응을 위한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유동성 공급이 상승의 원동력으로 풀이됐다.

모든 위험 자산이 올랐다. 당연한 현상이다. 미래의 자산 가격을 현재의 가치로 할인하는 금리가 0 수준이거나 심지어 마이너스인 경우도 있어서다.

비트코인 가격이 약진하면서 중앙은행의 고유 권한인 '시뇨리지(seigniorage)'의 경계도 약화했다. 시뇨리지는 화폐의 액면가에서 화폐 제조비용과 유통비용을 뺀 차익을 일컫는다. 쉽게 말해 돈 찍는 잉크값과 종이값 빼고 남는 건 모두 중앙은행이 몫이었다.

과거 봉건제도 하에서 시뇨르(seigneur.영주)들이 화폐주조를 통해 이득을 챙겼던 데에서 유래한 말이다.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화 발행 국가인 미국은 막대한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에도 달러화의 시뇨리지를 바탕으로 번영을 누려왔다.

미국은 2009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디폴트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켰지만 달러화 시뇨리지를 바탕으로 가장 빨리 회복하기도 했다.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과 한국 등 신흥국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유탄을 맞고 더 힘들어졌다. 달러화 시뇨리지에 따른 결과물이다.

비트코인은 이런 달러화 시뇨리지에 대한 일종의 반란이다. 가상화폐에 대한 개념이 일반화되면서 이제 비트코인은 인플레이션 헤지 기능을 갖춘 우량 자산 자리까지 꿰차고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시뇨리지의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에 대한 금융권 차원의 성찰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희소성에만 천착한 탓이다. 만약 블록체인과 코인을 분리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도 찾아보기 힘들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는 블록체인을 운영하기 위한 일종의 비용이다. 네트워크에 발생하는 천문학적인 거래내용에 대한 블록을 만들고 순서를 찾는 이른바 채굴자들을 위한 인센티브이기도 하다. 단방향 암호화 알고리즘이 사용됨에 따라 엄청난 하드웨어 리소스와 시간이 투입되는 데 따른 일종의 보상인 셈이다.

채굴자들이 없다면 블록은 체인으로 만들어질 수도 없다. 자본주의 특성상 유인이 있어야 공헌이 뒤따른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는 바로 이런 채굴자에 대한 보상이다.

만약 블록체인이 공공사업에 적용된다면 채굴은 공공의 영역이 된다. 공공의 영역이 엄청난 하드웨어 자원을 제공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공공의 영역이 블록을 만드는 채굴자가 되면 코인이 필요 없어진다.

특정 사업에 블록체인이 적용되는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경우 블록체인에 참가하는 주체는 아주 폐쇄적인 성격을 지닐 수 있다. 블록 참가 주체를 서비스 제공업체들이 관리하는 서버로 한정하면 보안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된다. 분산저장을 하되 블록 참가자들이 아닌 서비스 제공업체의 서버에 분산저장 하는 개념이다. 채굴업체들에 코인을 줄 필요도 없다. 블록체인 참가자가 사람이 아니라 저장매체를 가진 기계인 셈이다. 코인을 발행할 이유도 없어진다.

블록체인과 코인이 분리될 때 어떤 파장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토의가 더 필요해 보인다. 블록체인 전체 알고리즘에서 코인을 분리할 수만 있다면 여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가상화폐를 볼 수도 있어서다. (배수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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