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작업이 본격화한 가운데 한진그룹 내 마지막 알짜로 평가받는 정석기업에 대한 활용법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한진그룹은 산업은행에서 8천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받고, 한진칼 지분도 내주기로 한 데 이어 대한항공은 2조5천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유상증자로 조달한다.

산은이 한진칼에 투입하는 자금은 대한항공으로 넘어가고, 유상증자로 조달하는 자금 중 1조5천억원과 함께 아시아나항공 인수 자금으로 쓰인다.

유상증자를 통해 확보한 자금은 자본으로 귀속되지만,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한 자금을 사실상 모두 외부에서 조달하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산을 활용해 자금을 충분히 조달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정석기업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데 대한 의구심이 제기된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오는 3월 중순 2조5천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한다.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빅딜'이어서 유상증자 주관사만도 7곳에 달한다.

최근 에어부산 등 저비용항공사(LCC)가 실시한 유상증자에 조단위 뭉칫돈이 몰렸고, 코스피가 3,000선을 돌파하는 등 증시 여건이 나쁘지 않아 유상증자에 성공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에 따라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한 자금상 걸림돌은 사실상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인수 이후의 자금 사정을 고려하면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유상증자로 마련한 자금 중 1조원을 운영자금으로 쓸 예정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여전히 항공업황의 개선을 장담할 수 없고, 인수 후 통합작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예기치 않은 변수와 그에 따른 비용 부담 가능성도 있다.

산은이 추가로 기간산업안정기금 등을 통해 지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전제로 강력한 자구노력을 요구한 상황이어서 이 또한 장담할 수 없다.

항공업계 안팎에서는 한진그룹이 정석기업을 자금 조달 카드로 꺼내 들 수 있다고 보고있다.

정석기업은 한진그룹 부동산 임대관리 회사다.

남대문로 한진빌딩 본관과 소공동 신관, 서울역 한일빌딩, 인하대국제의료센터 등 그룹 내 주요 빌딩을 소유하며 사무실 임대 및 빌딩관리 대행, 각 주차 운영 관리가 주요 사업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정석기업은 작년 3분기 누적 매출 310억원, 영업이익 96억원, 당기순이익 75억원이다.

진에어, 토파스여행정보, 칼호텔네트워크 등 한진칼이 공개하는 4개 자회사 중 유일하게 흑자를 거뒀다.

정석기업은 첫 감사보고서를 제출한 1999년에 영업손실을 기록한 뒤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영업이익률은 매년 30%에 달하며, 부채비율도 21.1%에 그친다.

부동산 판매, 개발 등 고수익 사업이 아닌 단순히 임대, 관리를 통해서만 매년 안정적으로 4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정석기업은 한진그룹이 한진칼 중심의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기 전까지만 해도 해도 정석기업→㈜한진→대한항공→정석기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로 그룹 지배구조 중심에 서 있었다.

2013년 대한항공과 정석기업 인적분할을 단행하면서 주요 계열사 지분이 한진칼로 집중됐지만, 여전히 정석기업은 한진그룹의 숨어있는 '비밀병기'로 여겨진다.

비상장사로 지분의 시장가는 알 수 없지만, 시장에서는 한진빌딩의 가치만 1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석기업은 한진칼이 지분 48.27%를 가지고 있지만, 나머지가 오너 일가와 이들이 지배하는 정석물류학술재단 등이 소유하고 있어 사실상 총수 일가의 가족회사나 다름없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4.59%, 어머니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이 6.87%,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조현민 ㈜한진 부사장이 각각 4.59%씩 보유하고 있다.

2019년 4월 조양호 회장 별세로 한진 오너 일가가 정석기업 지분을 팔아 2천7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 재원을 마련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지만, 이들은 이 대신 한진칼 보유 지분을 담보로 은행 담보대출을 받아 납부했다.

지난해 4월 산은 등 채권단이 대한항공에 1조2천억원을 지원받으면서 조 회장이 2조원 규모의 뼈를 깎는 자구안을 마련했을 때도 정석기업은 대상에서 빠져있었다.

금싸라기 땅 송현동 부지를 매각하고 주요 사업인 기내식 등 핵심 사업부를 모두 내다 팔았지만, 정석기업은 건드리지 않았다.

한진그룹 전반이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정석기업은 무풍지대였던 셈이다.

코로나19 상황이 예상보다 장기화할 경우 통합 항공사를 경영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이 추가로 지출될 가능성도 있다.

화물영업 특수에 힘입어 간신히 버티고는 있지만, 두 항공사가 당장 올해 연말까지 갚아야 하는 단기부채만 10조원이 넘는다.

업계 관계자는 "항공사 통합 추진 과정에서 특혜 논란을 빚은 산은이 무작정 추가 지원에 나설 수는 없을 것"이라며 "추가 자금 소요가 발생한다면 한진그룹이 손을 댈 수 있는 곳은 정석기업 밖에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조원태 회장 등 총수 일가가 선뜻 정석기업을 활용한 자금 조달에 응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는 시각이 많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자금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산은과 맺은 투자합의서에 따라 조 회장이 경영권은 물론 한진칼과 대한항공 지분까지 담보로 잡힌 상황이어서 정석기업을 최후의 보루로 남겨둘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산은은 한진칼에 8천억원을 지원하면서 경영성과 미흡시 조 회장이 담보로 제공한 한진칼과 대한항공 주식 처분 및 퇴진, 5천억원의 위약금 부담 등을 명시한 7대 의무조항을 내걸었다.

업계 관계자는 "정석기업은 조원태 회장 등 총수 일가가 활용할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자산이다"라면서 "산은의 경영간섭에 따라 한진칼이나 대한항공에서의 배당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어 정석기업이 이를 대신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자금 마련이나 자구계획안 추진 과정에서 정석기업의 자산을 활용하지 않은 것이 조원태 회장 등 총수 일가의 이해관계를 지나치게 고려한 결과라는 지적도 제기한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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