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BNP자산운용 지분 35% 인수…완전자회사로 자산운용 리빌딩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지난 2020년 가을,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자크 드 에스티스(Jacques d'Estais) BNP파리바그룹 부사장이 화면 너머로 마주했다. 그룹의 글로벌 비즈니스를 총괄하며 일본과 한국 등 아시아시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자크 드 에스티스 부사장은 현재 합작사가 과거만큼 시너지를 내지 못한다는 데 예상보다 쉽게 동의했다. 한때 세계적인 채권트레이더로 시장의 변화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와, 과거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을 직접 경영했고 이제 그룹 자산운용사업의 저변 확대를 꿈꾸는 조 회장의 대화는 막힘이 없었다. 그들은 이후에도 몇차례 화상회의를 더 이어갔다. 그렇게 20년간 이어진 합작의 역사가 끝났다.

◇ 합작사 청산은 시대 흐름…완전자회사로 경영 주도권 되찾아

15일 투자은행(IB) 업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금융지주는 이날 오후 BNP파리바에셋매니지먼트로부터 신한BNP자산운용 지분 35%를 인수한다.

인수 금액은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시장에서 평가하는 신한BNP자산운용의 가치가 4천억원 수준임을 고려하면 지분 인수 가격은 1천억 원 중후반에 거래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의 출발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02년 BNP파리바는 옛 신한투자신탁운용 지분 '50%-1주'를 인수, 신한지주와 합작사를 설립했다.

당시 BNP파리바는 영국의 HSBC, 독일의 도이체방크와 함께 유럽에서 손꼽히는 3대 글로벌은행이었다. 조흥은행과의 합병을 마치고 이제 막 리딩금융의 꿈을 꾸기 시작한 신한지주에는 필요한 전략적 우군이었다. 이에 신한지주는 합작사의 최고경영자(CEO) 선임 권한을 BNP파리바에 주면서까지 손을 잡았다.

이후 경영의 주도권은 조금씩 신한지주에 넘어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SH자산운용(옛 조흥투자신탁운용)이 합병되며 신한지주는 합작사 지분을 65%까지 보유하게 됐다. CEO에 이어 최근에는 최고투자책임자(CIO)까지 함께 선임하며 영향력을 확대했다.

그러나 한계는 분명했다.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유럽계 금융회사와의 공동경영은 녹록지 않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9월 기준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의 자산 규모는 57조6천억원으로 업계 6위다. 명실상부한 업계 톱티어인 신한카드와 리딩뱅크 경쟁을 이어가는 신한은행, 매년 두자릿수대 성장을 보이는 신한캐피탈과 비교하면 초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은 자산의 절반 이상을 채권 중심으로 운용했다. 주요 고객타깃도 안정적인 기관에 뒀다. 수익률 불치 펀드라는 오명을 썼던 '봉주르 차이나'의 손실이 리테일영업을 어렵게 한 것도 배경이 됐다. 하지만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대표펀드는 이후에도 나오지 못했다. 이는 대형 은행계열 판매사에 힘입어 매년 스타 매니저, 스타 펀드를 배출함으로써 국내 공모펀드 시장과 함께 성장한 KB자산운용과는 꽤 대비되는 행보였다.

BNP파리바도 시대의 흐름을 인지하고 있었다. 매년 70~80억원 수준의 배당을 가져갔을 뿐 합작사로써 유의미한 성장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IMF 직후 이제 막 글로벌 금융시장에 눈을 뜨려는 한국은 합작사를 통한 높은 투자 수익이 기대되는 시장이었지만, MSCI선진국지수 편입까지 눈앞에 둔 지금의 신한BNP자산운용은 성장이 멈춘 자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한 자산운용사 CEO는 "최근 지분 투자에 기반한 합작사보다 펀드 투자에 함께하는 형식의 제휴가 수익 극대화에도 적합하다"며 "이미 국내 다수의 많은 합작사가 결별했고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역시 그 흐름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머니 무브를 주도하는 시장지위를 내다보는 우리나라에서 합작사의 거버넌스는 비효율적이다"고 지적했다.

◇보험·자본시장 이어 자산운용까지…신한이 달라졌다

시대의 흐름이라지만, 합작사 청산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BNP파리바는 신한지주[055550] 지분 3.5%를 보유하고 있는 전략적 투자자(SI)로 현재 필립에이브릴 기타비상무이사를 통해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합작사를 청산해도 SI로서의 계약은 유지된다.

하지만 필립에이브릴의 임기는 오는 3월 말까지다. 지난해 국민연금이 그의 독립성 문제를 지적한 만큼 올해 BNP파리바는 새 인물을 추천해야 한다. 만약 사외이사 추천 권한을 포기한다면, 이사회 내 우군 한 명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BNP파리바와의 합작사 청산은 조 회장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조용병 회장은 취임 이후 그룹의 외형을 꾸준히 확장했다. 오렌지라이프 인수를 통해 보험사업 영역을 확대했고, GIB·GMS 등 매트릭스 조직을 통해 자본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자산운용 리빌딩은 그 뒤를 잇는 대표적 행보다. 조 회장은 국내외 중소형 자산운용사 인수를 추진해 인 오가닉 성장을 도모했고, 신한리츠운용·신한대체투자운용에서 더 나아가 신한AI·신한벤처투자까지 그룹의 자산 운용 영토를 넓혔다. BNP파리바와의 합작사 청산은 이런 리빌딩 과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다.

완전자회사가 된 신한자산운용(가칭)은 향후 그룹사 간 시너지를 확대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그간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리테일 중심의 상품 개발에 주력하면서도 OCIO 등 자산운용 업계에 새로운 먹을거리로 등장한 신규 비즈니스도 강화해야 한다.

대체 자산 이관작업에도 속도가 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은 대체투자자산 수탁고를 신한대체투자운용으로 양도하려 했으나 BNP파리바의 반대에 부딪혀 자산이관이 중단된 상태다. 그룹 자산운용 부문 전반의 대대적인 리빌딩이 진행되는 만큼 강점이 있는 사업별로 적극적인 자산양수도 추진이 불가피하다.

세계적인 마켓플레이어들과의 제휴에도 힘이 실리게 됐다. 앞서 신한지주는 미국계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크레디트스위스(CS) 등과의 전략적 제휴를 추진하기도 했다.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유럽형 자산운용에서 니치 마켓을 공략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미국형 자산운용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에서는 완전자회사로 다시 태어난 신한자산운용의 인적 변화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재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에는 2명의 프랑스계 임원이 자리하고 있다. 변화는 시작됐다. 신한지주는 재작년 월가 출신의 박태형 부사장을 선임해 조직 운영의 변화를 예고한 상태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관계자는 "TDF나 ESG 투자 등 그간 강점이 있었던 비즈니스는 차별화를 도모하고, 새로운 사업 영역에 도전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며 "완전자회사 이후 사업 영역에 대해선 세부적인 논의가 더 필요하지만, 원 신한 관점에서 그룹의 지위에 걸맞은 자리를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jsjeong@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6시 10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