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미국 경기 부양을 위한 얼개가 속속 공개되고 있다. 연일 쏟아지는 각종 정책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를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친환경'이다. 월스트리트 등 금융권도 '친환경이 선이다'라는 화두를 바탕으로 돈 냄새를 맡고 있다.

바이든 정권 등 세계 각국이 친환경에 목을 매는 까닭은 시대적 요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필요성도 이에 못지않다. 4차산업 혁명기를 맞아 친환경 투자가 그나마 우회생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실물 투자이기 때문이다. 4차 산업의 총아가 된 공유경제 등은 일자리 차원에서는 달갑지 않은 존재다. 에어비앤비는 호텔 하나 가지지 않고 숙박업 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시가총액을 자랑하고 있다. 블록체인이나 클라우드 등 4차산업의 다른 부문도 일자리 창출면에서는 친환경 부문을 따라올 수 없다.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을 이끄는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는 월가에서도 손꼽히는 친환경 전도사다.

래리핑크는 순배출량을 '0(제로)'로 만드는 넷제로(net-zero) 정책를 지지하기 위해 기업을 압박하고 나섰다. 그는 투자대상 기업 CEO와 고객에 보낸 서한에서 온실가스 넷제로를 달성하기 위한 사업전략을 공개하도록 투자대상 기업에 요구하기로 했으며, 공개와 대책이 부족한 기업의 경우 일부 펀드에서 제외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래리 핑크가 친환경 전도사가 된 데는 개인적인 경험도 반영됐다. 래리 핑크는 지금은 블랙록의 부회장인 필립 힐더브랜더 전 스위스 중앙은행(SNB) 총재와 씨티 그룹 전회장인 마이클 코벳 등과 해마다 알래스카에서 플라이 낚시를 즐겼다. 이 과정에서 지구온난화로 툰드라 지역이 불타고 대기가 연기로 가득 찬 경험을 한 것이 래리 핑크가 친환경에 새삼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됐다.

타고난 금융인인 래리 핑크는 연기로 가득 찬 알래스카에서 '탐욕과 공포'를 동시에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느낀 공포는 기후 위기가 투자의 위기로 이어진다는 점이었다. 툰드라를 불타게 한 요인들이 결국은 자산 가격에도 변화를 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월가가 '이윤추구'라고 완곡하게 표현하는 탐욕도 그의 촉에 감지됐다. 누구든지 기후변화의 해법을 발견하고 이에 투자한다면 미래의 승자가 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래리 핑크 뿐만 아니라 월가는 진작부터 친환경 부문 등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왔다.

최근 한국에서 친환경 논쟁을 벌이고 있는 원자력에 대해서도 월가는 이미 경제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토니 세바가 쓴 '에너지 혁명 2030'에 따르면 씨티은행은 원자력 산업에 대한 보고서 제목을 '새로운 원자력 발전소:경제학은 이를 거부한다'로 붙였다. 원자력은 너무 비싸다는 이유에서다. 원자력은 엄청나게 비싼 탓에 대규모의 보조금과 정부 보호를 수반하는 규제포획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에너지원으로 지목됐다. 규제포획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규제기관이 피규제 기관에 의해 오히려 포획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정부 기관이 보호해야 할 공공의 이익을 희생해서 정작 규제해야 할 산업계를 보호하는 꼴이라는 의미다.

'에너지 혁명 2030'의 저자인 토니 세바는 최근 삼성그룹의 초청을 받는 등 요즘 한국에서도 몸값을 높이고 있다.

그는 "원자력은 좀비"라고 비난했다.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어서다. 살아있는 자의 피를 빨아먹는 좀비처럼 원자력은 납세자들의 세금으로 이뤄진 보조금에 의존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원자력이 화석 연료를 대체하는 '청정에너지'로 자리 잡은 것도 업계의 로비 결과로 평가 절하됐다.

그는 지난 2012년에 발표된 영국 셀라필드 원자력 발전소의 해체비용이 1천100억달러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저렴한 것으로 알려진 원자력 발전 비용에 발전소 해체 비용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토니 세바는 '에너지 혁명 2030' 서문을 통해 인류가 돌을 다 써버려서 석기시대가 종말을 맞은 게 아니고 말이 없어 마차운송 산업이 무너진 게 아니라고 일갈한다. 같은 맥락에서 석유가 고갈되고 우라늄이 없어서 화석 연료를 바탕으로 하는 내연기관이 종말을 맞고 원자력 발전이 퇴출당하는 게 아니다. 신재생 에너지와 전기자동차 등 새롭고 강력한 기술이 비즈니스 모델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기존 에너지 산업이 퇴출당하는 것이다.

한국의 일부 지도자들만 유독 좀비 같은 원자력을 되살리려는 이유가 뭘까. 친환경을 화두로 삼는 미국은 물론 월가도 원자력에 대해서는 눈길도 주지 않는데 말이다.(배수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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