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문정현 기자 = 사상 최고치를 경신해온 미국 증시의 오름세가 주춤해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실질금리의 추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의 금리 상승이 경기회복 기대감에 따른 주가 상승 시나리오를 뒤흔들 가능성이 있다며 주가가 미국 금리 상승을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22일 보도했다.

지난주 미국 증시는 상승 속도가 눈에 띄게 둔화해 사상 최고치 부근에서 정체된 움직임을 나타냈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경제 자문은 지난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시장 심리가 변화하고 있다"며 좋은 뉴스도, 나쁜 뉴스도 더 이상 시장에 재료가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작년 말부터 주가를 밀어 올린 것은 경기 회복 기대감에 따른 '리플레이션 트레이딩'으로, 투자자들은 어떤 악재도 호재로 바꿔 해석하는 경향을 보였었다.

미국 대선 직후에 그동안 마이너스 재료로 인식돼왔던 민주당 출신 대통령과 민주당의 상·하원 장악이 어느새 매수 재료로 뒤바뀐 것이 그 전형적인 예다.

'바이든 정권의 대규모 부양책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으로 경기가 꾸준한 회복 기조를 보이는 한편,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코로나19의 마이너스적인 영향을 억제하기 위해 미증유의 금융완화 정책을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는 장밋빛 시나리오가 흔들리지 않으면 시장은 어떤 악재료도 매수 재료로 반영했다는 얘기다.

이처럼 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낙관적인 분위기가 최근 바뀔 조짐을 보이는 것은 높아지는 인플레이션 압력과 이에 따른 채권 금리 상승 때문이라고 매체는 분석했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1.3%대까지 올라 주가 상승에 제동을 걸고 있다.

신문은 인플레이션이 주가에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극단적인 물가 상승이 아니라면 경기 회복 때 나타나는 인플레이션은 오히려 주가에 플러스로 작용한다. 제품과 서비스 가격이 오르면 기업의 매출도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 장기 국채 금리 상승은 시장의 낙관적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명목 금리인 10년물 국채 금리를 기대 인플레이션율(BEI)과 실질금리로 분해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매체는 설명했다.

작년 8월 0.5%대였던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꾸준한 상승세를 보여왔다. 이 명목 금리를 기대 인플레이션율과 실질금리로 분해해보면 그간의 금리 상승은 거의 기대 인플레이션율 상승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다. 명목 금리에서 기대 인플레이션율을 뺀 실질금리는 대체로 마이너스 1% 전후에서 보합세를 나타냈다.

신문은 기대 인플레이션율 상승이 명목 금리를 밀어올리는 경우 인플레이션이 주가에 마이너스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명목 금리 상승이 경기 회복을 반영한 '좋은 금리 상승'이면 금리 상승에 보조를 맞춰 주가도 오른다는 것이다.

오히려 주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쪽은 실질금리다. 신문은 2017년 이후 미국 실질금리와 S&P500지수의 12개월 예상 PER 그래프를 겹쳐보면 두 지표가 거의 같이 움직인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전했다. 실질금리가 내려가면 PER가 올라가고 실질금리가 오르면 PER가 내려가는 역상관관계를 보인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테이퍼 탠트럼(taper tantrum: 긴축발작)이라고 불리는 2013년 5~6월의 세계 금융시장 혼란이다.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는 의회 증언에서 "상황의 개선이 지속 가능하다고 확신할 수 있으면 향후 몇 번의 회의에서 자산매입을 축소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을 처음 언급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버냉키의 발언에 당황한 시장은 자산매입 축소뿐만 아니라 금리 인상 가능성도 반영하기 시작했다.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소폭 하락하는 가운데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반영한 실질금리는 마이너스권에서 플러스 영역으로 대폭 상승했고, 이 여파로 주가는 크게 하락했다.

노무라증권의 마쓰자와 나카 전략가는 "지난주 미국 10년물 금리가 1.2%를 돌파하면서 채권시장이 '리플레이션 트레이딩' 국면에서 '금융 정상화 트레이딩' 국면으로 들어섰을 가능성이 있다"며 "채권 시장은 코로나19 이후 경제 회복을 이미 반영했으며 기준금리 인상 시기가 연준 발표보다 앞당겨질 것으로 보기 시작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문은 마이너스 1%를 밑돌았던 10년물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0.8%로 조금씩 오르고 있다며, 주가 오름세가 지난주 후반 막힌 것은 이와 같은 실질금리 상승세를 경계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SMBC닛코증권은 "연준이 테이퍼 탠트럼을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고 금리 인상과 테이퍼링의 가이던스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며 "연준이 연내 테이퍼링과 관련한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할 것으로 보이나 시장이 금리 인상을 반영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만약 예상이 맞는다면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 오름세는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고 신문은 예상했다.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2018년 고점을 넘어 2.2%까지 오른 상황이라 추가적으로 대폭 상승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2.3% 정도,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0.8% 정도라면 미국 10년물 금리는 1.5% 정도가 상한선이 될 것으로 분석됐다. 이대로라면 증시가 크게 조정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매체는 전망했다.

하지만 니혼게이자이는 미국 10년물 금리가 1.5%를 상회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10년물 금리가 1.5%를 넘을 경우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아니라 실질금리가 명목금리를 밀어 올릴 가능성이 높아서다.

SMBC닛코증권은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0.5% 정도로 상승할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다"며 "이 경우 세계 주가는 크게 조정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무라의 마쓰자와 전략가는 코로나19 위기 수습을 선제적(forward looking)으로 반영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채권시장과 코로나19 수습 가능성에 대해 아직 신중한 입장을 보일 수밖에 없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발언에 갭이 있다는 점이 위험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연준이 후행적(backward looking)으로 된다면 금리 인상을 선반영하는 시장을 제어하지 못하게 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신문은 금리와 주가의 방향을 현 단계에서 예상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주가의 장래를 점치는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 명목 금리가 아닌 실질금리의 움직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jh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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