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잘 짜인 쿠팡의 상장 각본
[데스크 칼럼] 잘 짜인 쿠팡의 상장 각본
  • 고유권 기자
  • 승인 2021.02.2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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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한국 유니콘 기업의 쾌거". 뉴욕 증권거래소(NYSE)에 상장을 결정한 쿠팡을 두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내린 평가였다. 기업가치가 55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외신 보도와 맞물려 경제부총리마저 들떴나 보다. 쿠팡의 뉴욕 증시 상장 추진을 보고 벤처투자 활성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는 말도 곁들인다. 정부가 벤처와 창업의 생태계 강화를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는 다짐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뉴욕 증시에 상장을 추진하는 곳은 한국에 영업장을 둔 쿠팡 코리아가 아닌 미국 델라웨어주에 본사를 둔 쿠팡LLC(쿠팡INC로 전환 후 상장)다. 인구가 100만 명도 안 되는 델라웨어주에 등기가 된 회사만 140만 개를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세금 회피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가진 곳이어서 많은 기업이 이곳에 페이퍼 컴퍼니 형태로 회사를 설립한다. 굳이 회사의 국적 문제를 따지는 게 무의미한 세상이긴 하지만 뉴욕 증시의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곳은 델라웨어주에 본사를 둔 미국 기업 쿠팡LLC다. 이 회사의 대표 김범석 역시 미국 국적자다. 벤처로 시작해 성장해 온 쿠팡의 성공 스토리를 국적 문제를 들어 초를 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번 쿠팡 상장을 계기로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호들갑스러운 얘기들에 대해선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하버드대 출신들이 뭉쳐 만든 포워드 벤처가 미국의 소셜커머스 기업인 그루폰을 모델로 삼아 쿠팡이라는 사이트를 열고 영업을 시작한 것은 2010년 8월이었다. 10명 남짓한 인원이 모여 시작한 사업은 하루에 하나씩 할인 상품을 소개하는 말 그대로 초기 소셜커머스 사업이었다. 30~40% 수준의 대폭 할인을 통해 특정 상품을 공동구매하는 방식의 사업이었다. 소셜커머스 또는 이커머스라는 용어 자체가 낯선 시절이었지만 쿠팡의 시도는 대박을 쳤다. 소비자의 구매 심리를 제대로 파악했고, 이를 사업화한 게 주효했다. 결국 때 이른 성장 가도에 올라탔다.

2011년 8월 쿠팡 출범 1주년을 맞아 김범석 대표는 기자들 앞에 섰다. 그의 일성은 "2년 안에 나스닥에 상장하겠다"였다. 나스닥 진출의 목적은 자금 조달이었고, 그렇게 확보한 돈으로 해외에 진출하겠다는 포부도 밝힌다. 김범석 대표의 약속은 결국 9년 넘게 지나서야 성사된 셈이다. 물론 나스닥이 아닌 NYSE로 목적지만 달라졌을 뿐이다. 김범석 대표는 지금껏 한 번도 한국 증시에 상장하겠다고 언급한 적이 없다. 회사 출범 이후 그의 목표 지점은 항상 뉴욕이었다. 실제 영업을 하고 있는 한국이 아닌 미국에 본사를 둔 것도 어찌 보면 그런 목표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른다.

소셜커머스 업체 쿠팡이 대규모 물류센터를 전국 곳곳에 짓기 시작하면서 이커머스라는 거대 시장으로 손을 뻗기 시작하고, 소위 '닥공'에 나선 시점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대규모 투자와 맞물린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쿼이아캐피탈이나 블랙록 등에서 받은 자금과는 규모 자체가 다른 돈을 소프트뱅크가 쿠팡에 대기 시작한 것은 2015년이다. 이후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가 쿠팡에 투입한 자금은 4조원에 육박한다. 쿠팡은 이 돈을 밑천 삼아 전국에 쿠팡 이름이 새겨진 물류센터 인프라를 대거 확장하기 시작했다. 반나절 만에 배송을 완료할 수 있는 로켓배송 시스템을 촘촘히 깔기 시작했다. 결국 김범석의 공세는 소프트뱅크의 돈의 힘이 밑바탕이 됐다.

쿠팡의 뉴욕 증시 상장을 두고 차등의결권이 없는 한국을 피해 미국으로 갔네, 한국의 규제가 심해 미국 시장으로 간 것이네 하는 등의 말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지나친 분석들이라는 생각이다. 모든 것을 단순화해 해석할 순 없지만, 때가 됐고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이유 말고는 다른 게 없다고 본다. 금융의 시각에서 보자. 쿠팡에 자금을 댄 투자자들은 자금을 회수해야 할 시점을 고려해야 했고, 김범석 대표는 새로운 투자자로의 손바뀜을 생각해야 했을 것이다. 손정의와 같은 거대 투자자를 다시 만나지 못한다면 여전히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쿠팡은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돌파구가 상장이었을 텐데, 유동성 규모 자체가 적은 한국 시장은 애당초 고려 대상도 아니었다. 결국 필요한 자금을 찾아 뉴욕으로 찾아갔을 뿐이다.

이번 상장을 계기로 쿠팡에 자금을 댔던 기존 투자자들이 '엑시트(EXIT)'를 할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농후하다. 결국 쿠팡이 성공적으로 상장을 한다면 진정한 승자는 손정의를 비롯한 투자자들이다. 그렇다면 쿠팡은?. 자금력이 풍부한 뉴욕 증시에서 새로운 자금줄을 잡을 가능성은 커진 셈이지만, 지금과 크게 무엇이 달라질 것인지를 생각하면 여전히 의문이다. 쿠팡의 성장 이면에는 가열찬 혁신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사실 돈의 힘도 무시할 순 없다. 상장을 통해 10억 달러를 확보해 공격적 투자를 계속하겠다는 게 쿠팡의 계획이라고 하지만, 지속성에 대한 숙제를 해소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번 상장이 쿠팡에겐 새로운 홀로서기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주식을 공개하는 순간 주주들의 요구 사항과 수준은 분명 이전과는 차원이 달라질 것이다. 금융에 의존해 사업을 해 온 쿠팡이 이젠 진짜 사회와 맞붙게 되는 시점이 시작되는 셈이다. '기브 앤 테이크(Give & Take)'와 '온리 머니토크(Only money talk)'가 지배하는 월가 주주들의 요구사항과 한국에서의 공격적 영업에서 초래된 여러 사회적 문제를 어떤 균형점으로 맞출 것인가도 쿠팡에겐 큰 숙제다. 김범석 대표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쿠팡은 지금까진 거대 투자자들의 막대한 자금과 보호 속에 참 손쉬운 사업을 해 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홀로서기의 시작이 됐다고 보는 것이다.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pisces73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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