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상환 문제없다는 당국…은행권 "충당금 부담 불가피"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금융당국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2일 발표한 대출 원금상환 만기 연장·이자 상환 유예 연착륙 조치의 핵심은 일시에 터질 수 있는 대출만기 리스크를 분산한 데 있다.

원금과 이자 상환 기간을 최장 5년까지 부여함으로써 차주의 부담이 줄어든 만큼 코로나19 대출의 대부분은 정상 상환에 문제가 없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다만 은행권은 충당금 부담이 커질 수 있음을 우려했다. 금융당국이 면책조항과 상환유예 대출에 대한 자산건전성을 기존 상태로 유지해 줄 수 있도록 했지만, 선제적인 리스크관리를 위해선 알아서 충분한 충당금을 적립할 수밖에 없어서다.

◇ "2~5년간 나눠 갚아라"…이자의 이자는 無

내달부터 금융회사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차주와 만기가 연장된 대출의 상환 계획을 논의하게 된다.

금융당국은 금융사의 상환 방안 컨설팅 제공, 잔존 만기가 유예 기간보다 짧은 경우 만기 연장 허용, 상환 유예된 이자에 대한 이자 미부과, 중도상환수수료 없는 조기 상환, 차주가 상환 방법·기간 결정 등 5대 원칙하에 자유롭게 상환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우선 만기를 유지해 기존 월상환금액의 2배씩 상환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6천만 원을 고정금리 5%에 빌린 소상공인이 잔존만기 1년 일시상환 대출을 받아 이자상환을 6개월 유예받았다면, 기간 종료 후 6개월간 매월 기존 이자 25만원과 유예이자 25만원을 합쳐 50만원씩 상환할 수 있다.

이때 유예기간만큼 만기를 연장하면 기존 월상환금액의 1.5배씩 상환할 수도 있다. 1년간 매월 기존이자 25만원에 유예이자 12만5천원을 더해 37만5천원씩 내는 경우다.

유예기간보다 장기로 만기를 연장하면 기존 월상환금액의 1.2배씩 상환도 가능하다. 원금일시상환 만기를 2년으로 연장해 유예기간이 종료되면 2년6개월 간 매월 기존이자 25만 원에 유예이자 5만 원을 더해 30만 원씩 상환하면 된다.

거치기간을 부여함으로써 초기에는 기존 월상환금액과 동일하게 갚되, 이후 1.5배씩 상환하는 것도 가능하다.

원금일시상환 만기를 1년 연장하고 6개월간은 유예이자 거치기간을 부여해 매월 기존 월상환금액 25만 원만 상환하다가, 잔여 1년간 매월 기존이자 25만 원과 유예이자 12만5천 원을 더한 37만5천 원씩 상환하는 경우다.

처음부터 기존 월상환금액과 유사한 금액으로 원리금을 분할 상환하는 것도 가능하다.

6천만 원을 고정금리 5%, 잔존만기 1년에 빌린 소상공인이 매월 500만 원의 원금분할상환 대출을 쓰다가 원금과 이자상환을 6개월 유예받았다면, 만기를 6개월 연장해 유예기간이 종료된 뒤 1년간 매월 원금 분할상환액 500만 원과 함께 기존 이자와 유예이자를 합한 금액을 상환하면 된다.

기존 월상환금액의 절반 수준으로 원리금을 나눠 갚을 수도 있다.

앞선 소상공인이 만기를 18개월 연장해 기존 원금 분할상환액 500만 원 대비 절반 수준의 원금 분할상환액에 기존 이자, 유예 이자를 더해 갚아나가면 된다.

권대영 금융위 금융산업국장은 "유예기간의 2~3배 정도의 기간을 줘야 정상적인 상환이 가능하다고 봤다"며 "6개월, 12개월, 18개월 정도 유예했다면 2년, 3년, 5년 정도 범위에서 차주가 충분히 잘 갚아 나갈 수 있다. 코로나19가 극복되더라도 집단 면역이 생기고 일상으로 100% 돌아가기엔 단계가 충분히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연체여신 '정상' 분류 가능하다지만…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이 같은 조치와 관련해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의 어려움을 피력했다.

한 시중은행 고위 임원은 "이번 결정 과정에서 실무진까지 충분히 논의에 참여했지만 경영관리 차원에선 리스크 관리 강화라는 부담을 더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며 "당국이 정상 여신으로의 분류를 허락했지만, 유예 조치된 여신이 불안해지면 스스로 알아서 건전성을 낮춰 관리해야 한다. 개별 충당금을 어떻게 쌓을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본다"고 귀띔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연착륙 방안을 발표하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금융회사의 적극적인 조치는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한 제재하지 않겠다는 면책 의지를 강조했다. 그만큼 은행 등 금융권이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는 뜻이다.

연착륙 방안이 적용된 대출의 자산건전성도 기존 수준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충당금을 추가로 쌓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코로나19에 따른 일괄적인 상환 일정의 변경일 뿐, 개별 차주의 상환 능력이 악화한 원리금 감면이 아니니 채권의 가치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는 게 금융당국의 해석이다.

또 회계상으로도 받지 못한 이자를 이자 수익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자칫 대출의 재연장으로 이자수익이 줄어들 수 있다는 금융권의 볼멘소리를 사전에 차단한 셈이다.

하지만 상환 유예 대출을 무조건 정상으로 분류하라는 뜻이 아닌 만큼 금융회사는 개별 판단에 따라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코로나19로 매출이 지속적으로 감소한 끝에 휴업이나 폐업 가능성이 커진 기업이나 소상공인의 대출이라면 자산건전성 하향조정과 충당금 적립은 불가피하다.

미수이자의 회계상 인식에 대해선 조삼모사라는 평가도 나왔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어차피 미래의 수익을 당겨 인식하는 조삼모사라 은행의 재무제표가 악화한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는 가시적인 효과가 있을 뿐"이라며 "자산건전성을 정상으로 분류하는 게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시장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은행주에 미칠 영향은 제한될 것으로 봤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금융당국의 만기 연장, 이자 유예 조치와 관련된 악재는 주가에 선반영됐다"며 "당분간 충당금 전략을 어떻게 쌓느냐가 실적의 키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시중은행의 이자 상환유예 신청 규모가 600억원 수준에 그친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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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4시 42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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