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최근 뉴욕 월가의 가장 큰 관심사 하나를 꼽으라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Inflation Expectation)가 아닐까 싶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의 핵심 변수인 미국채 수익률이 급등하면서 달러화 가치 등 금융시장의 모든 가격 변수들이 요동치고 있어서다. 기대 인플레이션은 손익분기 인플레이션((BEI·Break-Even Inflation)으로 지수화된다. 10년물 국채금리에서 물가연동채(TIPS) 금리를 차감한 값으로 측정된다.

최근 시장 참가자들이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전망하는지 보여주는 지표인 BEI가 2.0%를 넘어서면서 월가의 논쟁도 뜨거워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인플레이션 목표치인 2.0%를 넘어서면서 자기실현적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점점 많은 경제 주체들이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는 의미다. 개인이나 기업이 임금이나 비용을 산정할 때 앞으로 물가가 오를 것으로 생각하는 강도가 세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미국 증시가 미국채 수익률급등에 큰 폭으로 조정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식부터 집까지 모든 자산의 할인율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인플레이션 압박 요인인 비용인상(cost-push) 압력도 거세지고 있다. 뉴욕 외곽이나 뉴저지 지역 자동차 연료 가격이 최근 몇 개월 사이 폭등세를 보이는 등 원자재 가격 상승이 실생활로 빠르게 전이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갤런당 2.00달러 이하의 주유소를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지금은 2.50달러의 주유소를 찾는 것도 어렵고 2.7달러 안팎 수준이 대부분이다.

글로벌 경기를 정확하게 예측해 닥터 코퍼(Dr. Copper)라는 별명을 가진 구리 가격도 지난달에만 월간 기준으로 15%나 올랐다.

최근 기대 인플레이션이 치솟은 것도 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과 연관성이 높다.

특히 미국은 유가가 BEI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실증적 분석도 뒷받침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의 스티븐 잉글랜더는 최근에 발표한 자료를 통해 유가와 달러에 기반한 단순한 모델이 기대 인플레의 시장 측정치를 상당히 면밀하게 추종했다. 2006년부터 2016년까지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그의 모델은 최근 BEI의 상승을 꽤 잘 예측했다. 유가 급등은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지만, 효과는 일시적이다. 유가 급등이 중기적인 BEI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되지만, 실제로는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수요견인(demand-pull) 인플레이션 압력은 이제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점쳐졌다. 미국 가계의 소비여력을 나타내는 저축률은 역대급으로 높아졌다. 코로나 19에 따른 여행,외식 등의 감소 등 비자발적 제약으로 미국의 개인저축률은 2019년 7.5%에서 지난해 2분기 기준으로 25.7%까지 폭등했다.

여기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1조9천억달러 규모의 재정 부양책에 따른 영향은 아직 반영되지도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가계의 지출 증가에 따른 수혜가 예상되는 여행 관련 종목들은 벌써부터 주가가 치솟고 있다. 맥쿼리는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업종인 크루즈 관련 종목의 투자등급을 상향조정하기도 했다. 실제 크루즈업체 가운데 선두인 카니발은 2022년 상반기 예약자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수준을 넘어섰다.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라면 물가상승의 삼박자가 완비된 셈이다.

금융시장은 탐욕과 공포를 먹고 자란다. 지난 1년여동안 미국 증시 등 글로벌 금융시장은 탐욕에만 기대 폭주 기관차처럼 상승세를 만끽했지만 올해 들어 공포심이 고개를 들고 있다. 눈치 빠른 채권시장 참가자들이 인플레이션 등을 이유로 올해 들어 가장 먼저 공포에도 눈길을 주면서다. 외환시장도 슬금슬금 채권시장에 동조하는 모습이다. 나머지 자산시장도 이제부터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변동에 따른 채권시장 동향을 무시하지 못할 전망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어느덧 탐욕과 공포의 경계선에 진입하고 있다(배수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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