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종화 기자 = 한국은행의 설립 목적에 고용안정을 추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높아지는 가운데 목표 채택 전 검토가 더 필요하다는 신중론이 제기된다.

미국 등 선진국보다 경직적인 우리나라의 고용시장을 감안하면 통화정책이 고용안정에 미치는 효과가 제한적이고, 한은의 독립성 침해 논란이 불거지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작년 10월부터 현재까지 국회에는 한은 목표에 고용안정을 추가하자는 5개의 한국은행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작년 10월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의를 시작으로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잇달아 고용목표를 추가하자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다만 정치권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한은과 통화정책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신중론이 나오고 있다.

우선 채용과 해고가 잦아 고용이 신축적인 미국에서는 통화정책이 고용에 미치는 효과가 크지만 상대적으로 고용이 경직적인 우리나라에서는 그만큼 금리 정책의 효과가 떨어진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장재철 KB국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 고용시장이 미국만큼 탄력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구조적 경직성이 있다"며 "고용(목표)이 가지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고용 안정이 한은의 다른 정책 목표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일례로 고용을 늘리기 위해 한은이 저금리를 유지하는 경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거나 자산가격 상승으로 금융 불안정이 커질 수 있다. 물가와 금융의 안정은 현재 한은의 2대 정책 목표다.

이 때문에 한은도 고용안정을 정책 목표로 추가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큰 상황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2월 국회 업무보고에서 고용 안정을 한은 목표에 추가하자는 주장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실제 운용시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한 바 있다.

고용안정 목표를 추가하면서 목표 달성을 위해 한은의 권한을 늘려주는 방향의 개편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그마저도 마땅치 않다.

현재 한은의 기능 수행을 위해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금융 감독 권한은 고용 시장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미시적·재정적 고용 정책을 한은이 담당하는 것도 모양새가 어색하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한 연구용역 보고서에서 "한은에 고용 목표가 추가되는 경우에 추가적인 정책 수단을 도입해야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적절한 정책 수단을 생각해 내기도 어렵다"며 "현재로서는 추가적인 정책 수단을 도입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고용 목표 추가로 한은의 독립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진일 고려대학교 교수는 "고용 안정 목표를 추가할 때의 부작용으로 자산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도 있고, 한국은행의 독립성 등 정치경제학적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고용 목표 추가에 대한 논의가 과거보다 진전이 되면서 한은법 개정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양경숙 의원의 개정안은 기존 발의안과는 달리 고용안정 목표를 물가·금융안정보다 덜 우선시하는 '계층적 책무'로 추가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고용목표를 추가하는 데 따른 여러 논란을 피해가기 위한 방안으로 풀이된다.

양경숙 의원실은 "이번 개정안은 한국은행이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할 때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고용안정에 유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이는 이원적 책무를 도입하려는 기존의 개정안과 차별성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j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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