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연합인포맥스) 이효지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에만 특혜를 준다는 비난을 무릅쓰고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을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하지 않은 것은 현행 제도로는 규제가 쉽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28일 쿠팡을 대기업집단으로 신규 지정하면서 동일인을 김범석 의장이 아닌 쿠팡㈜로 결정했다.

이번 대기업집단 지정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것은 김범석 쿠팡 의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되느냐 여부였다.

공정위는 당초 김 의장이 아닌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다는 방침이었다가 쿠팡이 특혜를 본다는 비판이 일자 원점 재검토했다.

쿠팡과 지배구조가 비슷한 네이버의 경우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해달라는 네이버 요청에도 공정위 직권으로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자(GIO)를 동일인으로 지정한 바 있다.

공정위는 김 의장에 대한 특혜 논란을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쿠팡 계열사들은 공정거래법에서 적용되는 모든 의무사항의 적용을 받고 대규모유통업법에 의한 감시도 받는다"며 "국내 회사 기업집단과의 법 적용에 있어서 이들 회사의 차별점은 없다"고 말했다.

김 의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되지 않아 특수관계인과의 거래가 드러나지 않지만 공정위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SEC는 우리 친족 범위보다 좁지만 주요 주주와 배우자, 가족과의 일정 규모 이상 거래에 대해 공시 의무를 부과한다.

공정위는 쿠팡 동일인 지정 문제를 전원회의 토의안건으로까지 올려 논의한 끝에 현행 제도로는 외국인 총수 지정이 무리라고 판단했다.

경제력집중 억제 시책이 국내를 전제로 설계돼 있어 외국인 동일인이 지정될 경우 동일인관련자의 범위, 형사제재 문제 등에서 제도적으로 미비한 부분이 있다는 설명이다.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것은 법률행위로서 법적인 다툼의 대상이 될 수 있어서 사실과 법리의 관점에서 명확히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했다"며 "전원회의 토의 과정도 (김 의장 지정 가능성을 다룬) 언론 보도와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고 말했다.

현재 김 의장이나 친족이 가진 국내 회사는 없어 쿠팡㈜가 동일인으로 지정돼도 계열사 범위는 동일하다.

그동안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사례가 없고 에쓰오일처럼 외국계 기업집단의 경우 국내 최상단회사를 동일인으로 판단했다.

다만 공정거래법에 '외국인은 동일인이 될 수 없다'는 명시적 규정이 있지 않아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쿠팡 이슈를 계기로 구시대적인 동일인 지정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987년부터 시행된 동일인 지정 제도는 정부 지원으로 성장한 일부 대기업이 총수 일가를 중심으로 경제력을 집중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생겨난 한국식 규제다.

근자에는 정보기술(IT)업계에서 재벌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기업과 경영자가 나오고 있어 재벌을 중심으로 한 잣대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변화하는 기업환경에 맞게 공정위가 기업집단에 대한 규제를 바꿔야 할 이유다.

공정위는 쿠팡 동일인 지정 문제로 불거진 동일인 지정제도의 허점을 보완하고자 제도 개편에 나서기로 했다.

명확한 규정이 없는 동일인의 정의, 요건, 확인 및 변경 절차를 명문화하고 기업집단에 대한 규제를 효과적으로 집행할 방안, 동일인관련자 범위의 현실 적합성 등을 검토할 계획이다.

공정위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동일인 지정제도 폐지론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김 부위원장은 "우리 경제가 더 개방화됐다고 해서 경제력 집중이 완화되거나 일감 몰아주기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동일인 지정제도는 여전히 유효한 경제정책"이라고 말했다.

hj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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