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지난해 가계부채 증가율 목표관리를 중단했던 금융당국이 1년 만에 고삐를 다시 죄고 나섰다. '상환능력 범위 안에 처음부터 나눠 갚는' 가계부채 관리대책을 수년간 이어오며 나랏빚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던 금융당국도 이제는 두고만 볼 순 없다는 판단이 들 정도로 가계부채가 순식간에 급증했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세계 모든 국가가 확장적 금융·통화정책을 시행할 수밖에 없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주요국 대비로도 규모가 크고 증가 속도가 빨라 잠재적 금융 불안의 요인으로 꾸준히 지목돼왔다.

29일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102.8%로 집계됐다. 1년 새 7.6%포인트(P)나 늘었다.

같은 기간 미국은 78.8%로 4.1%P, 홍콩은 86.4%로 5.4%P 증가하는 데 그쳤다.

물론 고정금리와 분할상환 비중이 크고, 가계 금융부채 대비 자산의 비중이 크게 늘지 않은 점을 들어 금융시스템 리스크가 촉발될 가능성은 작다는 '위안'도 많았다.

하지만 코로나19를 이유로 어찌할 수 없는 저금리 환경은 자산투자수요를 늘렸고, 지난해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 불어닥친 '빚투·영끌' 현상은 신용대출 폭증세를 이끌었다. 실제로 작년 한 해 가계가 주식 투자를 위해 굴린 돈은 사상 최대인 83조 원에 이르렀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또 다른 방증이기도 하다. 이에 가계의 금융기관 차입금도 역대급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주택 구매와 주식투자 열풍, 코로나19 여파로 가계 빚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상황에서 최근 은행 등 금융권의 금리는 반등 추세로 뚜렷하게 돌아섰다. 앞으로 가계의 대출이자 부담이 빠르게 늘어날 경우 대외 충격에 부실화될 부채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이 중단했던 가계부채 증가율 목표관리를 1년 만에 재개하고 나선 것은 이런 시장과 금리 환경의 변화를 고려한 선제 조치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이 내년 목표치로 내세운 4%는 코로나19 이전까지 관리했던 수준이다. 빚투 열풍의 기반이 된 신용대출에 대해선 쏠림 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핀셋관리를 이어가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이 과정에서 전 금융권의 가계부채 부문별 동향을 매월 점검하고, 당초 증가율 목표치와 다른 경우는 케이스별 대응을 추진할 예정이다.

현재 일부 차주에만 적용해온 차주 단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확대 시행하는 것도 같은 논리에서다.

올해 7월부터 적용되는 1단계 조치에 따르면 서울 소재 아파트 중 약 83.5%, 경기도 소재 아파트 중 약 33.4%에 해당하는 주택담보대출 차주에 DSR이 적용된다.

총대출액 2억 원을 초과하는 차주에 적용하는 2단계의 경우 전 차주 중 12.3%가 해당한다. 전면 시행을 골자로 한 총대출 1억 원 초과 차주의 경우 전체 차주 중 차지하는 비중은 28.8%다. 비중은 적어 보이지만, 금액 기준으로 전체 가계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6.5%나 된다.

이는 그간 정책의 빈틈을 이용해 상환 능력을 벗어나는 범위의 고액 대출을 받은 차주의 규모가 그만큼 컸다는 뜻이기도 하다. 주택시장 안정 목적의 대출 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규제의 정합성·형평성 측면에서 실수요자를 위한 규제의 보완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마이너스통장과 같은 한도성 여신의 경우 신용대출 폭증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DSR 산정 과정에서 그간 마이너스통장에 획일적으로 적용해온 만기 10년의 기간을 순차적으로 줄이기로 했다. 실제로 5년 만기로 1년마다 갱신되는 구조지만, DSR 산정 과정에서는 10년이란 기간이 일괄적으로 계산돼 차주의 상환 능력이 실제보다 부풀려졌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런 규제 체제가 과거 주택담보대출 중심의 규제 강화 추세와 맞물려 작년 하반기 중 손쉽게 취급 가능한 신용대출로의 풍선 효과를 촉발한 것으로 보인다"며 "금융권의 신용대출 취급 경쟁으로 거액 신용대출 취급이 확대되는 상황인 만큼 제도를 정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달 17일부터 전 금융권으로 확대되는 토지·오피스텔 등 비 주담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한도 규제 확대도 마찬가지다.

특히 상호금융권의 비 주담대가 부동산 투기 자금조달에 악용될 개연성을 차단하고자 '상호금융정책협의회'를 통해 건전성 현황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기로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가계부채가 과도하게 누적될 경우, 향후 거시경제 측면에서 총수요 창출 제약은 물론 자산가격 조정시 거시건전성 악화 등 우려가 크다"며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금융지원 기조는 당분간 유지하되, 가계부채가 향후 우리 경제에 부담 요인이 되지 않도록 고삐를 죌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eong@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4시 30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