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금융위원회가 두산인프라코어가 발행한 영구채권의 자본성 여부를 점검하기로 하면서 '뒷북' 논란이 일고 있다.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으로 사실상 만기가 없는 영구채권이 자본으로 인정되는 길이 열렸고, 올해 4월 개정 상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국내에서도 일반기업들의 영구채권 발행이 가능해졌음에도 금융위가 그동안 무엇을 하다가 이제야 문제 제기를 하느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의 엇박자 행정이 시장의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이번에 논란이 된 두산인프라코어의 영구채권은 올해 2월초부터 발행 준비가 시작됐다. 국내 일반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시도되는 것이어서 시장의 관심도 컸다.

비슷한 시기에 다수의 국내 해운사들도 영구채권을 발행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일반기업이 발행하는 영구채권을 과연 자본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를 두고 시장에서 논란이 이어졌다.

자본확충이 절실했던 두산인프라코어는 이러한 논란을 매듭짓기 위해 다수의 국내외 로펌과 회계법인으로부터 자문을 받았다. 금융감독원과 회계기준원 등과도 수차례의 협의를 거쳤다.

당초 7월에 발행을 완료하려던 계획도 차질을 빚었다. 두 달간의 기다림 끝에 결국 "IFRS상 자본으로 인정된다"는 금감원의 유권해석을 받아냈고 성공적으로 발행을 마쳤다.

그러나 금융위가 자본으로 보기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면서 발행한지 한달이 넘어 제동을 걸자 영구채권의 자본성 여부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금융당국과 협의로 자본성 여부 문제는 해결된 사안이다"며 내심 마뜩지 않은 표정이다.

시장의 반응도 좋지 어리둥절 하기는 마찬가지다.

금융시장의 한 관계자는 5일 "그간 논란이 불거졌을 때 아무 말도 없었고 어떤 기준도 제시하지 못하던 금융위가 이제와 문제를 삼는 게 느닺없어 보인다"고 꼬집었다.

회계법인의 한 관계자는 "IFRS의 기본 원칙에 반하는 논란을 만들고 있다"면서 "회계처리 기준이나 방향과 관련해 금융위가 너무 깊숙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IFRS는 회계처리 기준과 방향에 대해 각국 정부가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점을 지적한 얘기다.

이러한 점을 의식한 듯 금융위는 지난 1일 "금융위원회가 두산인프라코어의 영구채권에 대해 자본이 아닌 부채로 회계처리해야 한다는 방침을 정했다"는 한 언론의 보도가 나온 직후 해명자료를 통해 "회계처리 문제 등 회계기준의 해석권한은 한국회계기준원에 있다"고 밝혔다.

법률적으로 금융위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는 해명이었지만 논란의 중심에 서고 싶지 않다는 의도를 드러낸 해명이었다.

회계기준원이 사실상 금융위의 관리ㆍ감독을 받고 있는 기관이어서 금융위의 해명이 궁색하다는 지적도 있다.

일각에서는 두산인프라코어가 금감원과 협의를 거쳤다고는 하지만 금감원이 자본성 여부를 결정할 권한이 없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것이란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금융위와 금감원의 오랜 '앙숙' 관계가 영구채권의 자본성 논란으로 확장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러한 금융위와 금감원의 엇박자로 인해 금융당국에 대한 시장의 혼선과 불신이 더욱 커지게 됐다는 비판도 있다.

금융사와 일반기업에 대한 기준을 다르게 적용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시중은행들의 자본적정성이 크게 떨어지자 2009년 3월 4조원의 펀드를 조성해 자본확충을 지원했다.

금융위기라는 특수 상황과 은행들의 공적 중요성을 감안해 실시한 비상조치였다.

당시 금융당국은 7개 은행이 발행한 3조5천억원의 하이브리드채권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도왔다.

당시 은행들이 발행한 하이브리드채권은 자본으로 인정됐고, 30년 만기로 발행 후 5년 시점에 콜옵션 행사가 가능했다.

최근 두산인프라코어가 발행한 영구채권과 발행구조가 유사했다.

만기가 한참 남았음에도 은행들은 이미 조기상환에 나섰다. 금리 부담 때문이었다. 금융위는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은행들이 발행하는 하이브리드채권과 사실상 다를 게 없음에도 금융당국이 달리 적용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IFRS의 기본 원칙에 합당한 조건으로 발행해 자본으로 회계처리 하려는 것까지 금융위가 일일이 관여를 하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뒤늦게 끼어들어 시장을 위축시킬 게 아니라 투자자 보호를 위한 장치를 마련하고 기업공시 제도를 개선하는 등 제도적 방안을 미리 준비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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