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5일 두산인프라코어의 영구채 발행 서명식에서 강만수 산은금융그룹 회장(좌)과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우)>



(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금융당국에 맞서지 마라'

은행업계에서는 불문율로 통하는 말이다. 금융당국의 직접 '간섭'을 받는 국책은행에게는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하지만 산업은행이 이러한 불문율을 깼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영구채권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자본성 재검토 지시에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산은은 두산인프라코어 발행 주관과 금융자문을 맡은데다, 현재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의 영구채권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모두 자본확충을 목적으로 발행을 했거나 발행을 준비중인 곳들이다.

산은은 지난 2일 "국제기준을 준수하고 관계기관과 협의해 우리 기업의 글로벌 위기 극복을 위해 적극 지원했는데 (자본 인정 여부에 대해) 재논의되는 것에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당혹스럽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자본성 여부에 대한 논란과 관련해서는 "국제 회계기준과 법적절차에 따라 발행 절차를 진행해 왔고 관계당국이 모두 자본으로 인정해 발행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 발행 예정인 신종자본증권에 대해 당국이 적절한 기준을 마련해 달라"는 요구까지 했다.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금융당국과 충분히 사전에 협의했는데 지금와서 왜 딴지를 거느냐는 얘기다.

금융위가 오히려 당황스러워 할 정도의 이례적인 내용이었다.

언론에 발표되는 공식 입장은 사전에 최고경영자에 보고되는 게 통상적이다. 금융당국을 상대로 한 공식 입장을 내놓을 때는 더욱 그렇다.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에게도 산은의 공식 입장은 사전에 보고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강 회장은 두산인프라코어의 영구채권 발행 성공에 특별한 감회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보다 더 심각한 경기침체로 기업들이 어려움에 처할 수 있어 국책은행으로서의 금융지원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물론 앞으로 발행을 준비하고 있는 기업들이 자본을 확충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해 어려움을 넘어서는데 영구채권이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산은이 이 과정에서 충분한 지원에 나설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게 강 회장의 생각이다.

산은의 공식 입장에 "글로벌 위기를 맞아 생존경쟁을 하는 기업에 당국의 전략적 판단과 지원을 요망한다"고 촉구하는 문구가 포함된 것도 이러한 이유다.

강 회장은 지난 달 5일 두산인프라코어의 영구채권 발행 서명식에서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또 "영구채권 발행을 위해 줄 선 기업들이 많다. 앞으로 착착 진행될 것으로 본다"면서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금융위의 '재검토'로 강 회장의 목표와 기대는 꺾이게 됐다.

자본확충을 목표로 영구채권을 발행하려던 기업들이 당장 발행 절차를 중단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산은의 한 관계자는 "금융위의 고민을 이해한다"면서도 "하지만 이제 막 싹을 틔우기 시작한 시장을 크게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다른 관계자는 "IFRS 기반에서 두산인프라코어와 같은 구조로 전세계에서 발행된 영구채권이 모두 자본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왜 논란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pisces73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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