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증권사들의 위법 행위에 초점을 맞춰 과징금과 검찰 고발이라는 강력한 제재를 내리기로 했다고 4일 밝혔다.
그러나 증권사들은 구조적으로 형성된 관행을 답습했을 뿐이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정부 행정지도가 담합의 `씨앗' = 증권사들이 소액채권 수익률을 담합 결정하게 된 배경은 정부가 소액채권 실물발행제를 등록발행제로 바꾼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국민 부담을 줄이고 거래 투명성을 높이고자 소액채권시장에 등록발행제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소액채권 매입자가 대부분 은행에 채권을 팔고 매도대행 증권사들이 이를 장내 매도하면 매수전담 증권사들이 의무적으로 사들이는 시장 구조가 만들어졌다.
소액채권 수익률은 매수전담 증권사들이 한국거래소에 제출한 신고수익률 가운데 상위 20%, 하위 10%를 뺀 나머지를 산술평균하는 방식으로 결정됐다.
공정위가 지적한대로, 매수전담 증권사들이 소액채권 수익률을 결정하게 돼 있어 담합의 유혹이 상존하는 상황이었다.
국민주택채권 수익률과 국고채 수익률의 차이(스프레드)를 40bp(1bp=0.01%)에서 10bp 내외로 축소하라는 정부의 행정지도는 담합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증권사들이 인위적으로 스프레드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려 하는 과정에서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관행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시장조성자 역할을 떠맡고 있는 증권사들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소액채권 수익률을 책정하지 않고서는 매매 차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도 담합의 원인으로 거론된다.
증권사들은 시장조성자가 부담하는 비용과 위험에 대해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등록발행제도 유지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 이후 상호 정보교환도 중단되자 비용을 충당하기 어렵게 됐다"며 "일부 증권사들은 매수전담사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인다"고 말했다.
매수전담 증권사가 제출하는 신고수익률이 최종적으로 결정된 수익률과 4bp 이상 차이가 나면 매수전담사로 재지정될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담합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금융당국 수수방관도 문제 = 금융당국이 증권사들의 담합을 수수방관해 문제를 키웠다는 주장도 나온다.
금융당국이 미리 문제를 파악해 증권사들을 계도하고 적절한 대책을 마련했다면 증권사들이 검찰 고발까지 당하는 사태를 막을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다.
한국거래소의 경우 매수전담 증권사들이 제출하는 천편일률적인 신고수익률에서 담합의 정황을 충분히 포착할 수 있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매수전담 증권사들에게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증권사 실무자들이 자기 행위의 위법성을 인식하기는 어렵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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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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