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공급망 제약에 따른 물가 상승이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급기야 1970년대와 같이 물가 급등과 경기 침체가 같이 오는 스태그플레이션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지난 수십 년간 물가가 안 오르는 디플레이션 우려가 화두였던 세계 경제·금융시장은 당황하고 있다.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라던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도 최근 "공급망 제약과 높은 인플레이션이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오래가 내년까지 충분히 지속될 것 같다"고 퇴로를 열어뒀다. 곧 연준이 채권 매입 규모를 줄이는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앞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은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물가 안정이 제일의 목표인 연준을 자극해 빠른 속도의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게 할 여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은 증시에도 불청객이다. 기업이익을 갉아먹는 비용 상승을 초래해서다. 올해 기업 실적 개선 기대가 증시를 끌어올린 역할을 톡톡히 했는데,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다면 주가는 주요한 상승 동력 중 하나를 잃는다. 기업이 운임과 원자재 등의 가격 상승을 반영한 생산자 물가를 소비자에게 상당 부분 전가할 수 있다면 이익 감소에 대한 완충력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경기 회복이 온전하지 않은 데다 치열한 경쟁 환경에 노출된 기업은 이런 결단을 쉽게 내리기 어렵다. 또 내년 한국은 대선,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임기 연장이라는 이벤트도 앞두고 있다. 정치적으로 소비자물가 상승이 꺼려지는 시기인 것이다.

최근 미국의 기대 인플레이션을 측정하는 지표인 10년 만기 BEI(Breakeven Inflation Rate, 명목국채 수익률-물가연동국채 수익률)가 2.64%까지 올라 9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시작은 공급망 제약으로 촉발됐지만 앞으로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심리가 대중에 확산한다면 너도나도 물건을 사서 비축하려고 할 수 있다. 이는 자기실현적인 물가 압력을 만들면서 물가 상승을 장기화할 가능성을 키운다. 중앙은행이 장기 불안의 싹을 초기에 자르려면 조기 금리 인상 버튼을 누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 따르면 미국의 기준금리인 연방기금(FF) 금리 선물 시장은 내년 9월 인상 가능성을 83%로 반영한다. 일부 시장 참가자들은 인상 시기를 이보다 앞당겨 보고 있다.

당장 인플레이션이라는 폭설에 세상 모든 게 덮일 것으로 보여도 스태그플레이션까지 언급할 상황은 아니라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번 주 발표되는 3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이 둔화할 여지가 크지만 성장세가 완전히 꺾였다는 시각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또 9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가 30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더라도 물가 지표가 추세의 정점을 통과하는 과정에 있다는 관측도 있다. 특히 주요 통화에 대한 미 달러의 상대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 인덱스의 오름세가 꺾이고 환율도 달러당 1,200원에서 30원이나 급락한 점은 좋은 신호다. 이는 외환 측면에서 외국인의 한국 자본시장 이탈 위험을 줄여준다. 물론 현재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사라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극단적 비관론은 경계해야 한다. (투자금융부장 이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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