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가치투자는 여전히 옳다'

주식시장의 숱한 고수 중 이름만으로 하나의 장르가 된 인물들이 있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이사회 의장은 국내 주식시장에 '가치투자'라는 장르를 개척한 주인공이다.

시장의 쏠림이 성장주에 국한됐던 최근 몇 년간 가치주는 소외됐다. 그 사이 이 의장도 한국투자밸류운용이란 오랜 둥지를 떠났다.

하지만 새로운 시작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두우, 강대권이란 이채원의 장르를 좇는 후배들 덕에 새 라이프를 출발할 수 있었다.

◇ 눈 깜짝할 새 2천억 돌파…판매사가 인정한 '이름값'

29일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라이프자산운용의 수탁고는 지난 8월을 기점으로 2천억 원을 돌파했다. 옛 다름자산운용이 이 의장의 합류와 함께 라이프자산운용으로 이름을 바꾼 지 석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의 이야기다. DB금융투자를 비롯해 한국투자증권, 메리츠증권, 키움증권 등 판매사들 사이에서도 '역시는 역시다'는 평가가 나왔다.

라이프자산운용은 두 가지 큰 축으로 펀드를 운용한다. 그로쓰캐피털과 ESG 행동주의다.

성장금융의 영역인 그로쓰캐피털은 기업공개(IPO)와 메자닌 투자를 통해 기업에 직접 자금을 투입한다. 가능성 있는 기업에 실탄을 제공해 양적 성장을 돕는 셈이다. 남 대표가 다름자산운용 시절부터 이어온 코스닥벤처 사모펀드가 대표적이다.

ESG 행동주의는 이 의장의 영역이다. 컨설팅을 통해 기업에 직접 투자를 하기도 하고, 경영 자문을 하기도 한다. 최근 나온 3호 펀드까지 이채원의 이름을 믿고 들어온 자금만 1천억 원에 달한다.

이 의장은 ESG에 역발상 투자를 한다. ESG를 이미 잘하는 기업보단 잘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좋은 기업을 찾는다. 윽박지르지 않고 개선의 기회를 주는, 기업에 우호적인 착한 행동주의다. 그리고 그 바탕에 가치투자를 뒀다. 한 단계 진화한 가치투자다.

그로쓰캐피털과 ESG 행동주의로 기업의 전 생애주기를 커버하는 게 이들의 지향점이다. 라이프자산운용이란 이름은 기업의 라이프, 고객의 라이프를 믿고 맡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에서 따왔다.

그리고 기업의 다양한 라이프를 커버하는 과정에서 멀티전략을 활용하는 펀드도 설정했다. 강 대표가 운용하는 주식형 펀드는 그로쓰캐피털과 ESG 행동주의라는 두 축을 연계한 가운데 지점에서 탄생했다. 최근 시장의 제약으로 롱숏과 같은 포지션을 취하지 않았음에도 최근 석 달 수익률이 4%를 상회했다. 이 기간 코스피 수익률이 마이너스(-) 8%가 넘었음을 고려하면 시장을 12% 이상 아웃퍼폼한 셈이다.

◇ 이채원 움직인 남두우·강대권…'좋은 가치주·좋은 투자는 영원하다'

이 의장의 새로운 시작은 반성문에서 비롯됐다. 가치투자를 믿고 기다려온 고객들에 대한 미안함에서다.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단연 남 대표와 강 대표 덕이다.

중앙대 선후배인 이 의장과 남 대표의 인연은 20년이 넘는다. 교보증권에서 지점장을 하며 VC 업계와의 네트워크를 차곡차곡 쌓아가던 중 이 의장과 만난 남 대표는 오랜 시간 분기마다 이 의장을 찾아 시장의 방향과 좋은 기업을 묻고 또 물었다. 남 대표에게 이 의장은 투자의 길을 찾게 해 준 '친형님' 같은 존재다.

한국투자밸류운용 공채 1기인 강 대표는 업계 대표적인 이채원 키즈다. 이 의장은 여전히 강 대표의 입사지원서를 가지고 있다. 강 대표에게 이 의장은 펀드매니저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선생님'이다.

이 의장은 그런 남 대표와 강 대표를 각각 친동생, 애제자라고 칭한다. 아내조차 만류했던 창업에 대한 결심은 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 의장은 강조한다.

이 의장과 함께하고자 남 대표는 다름자산운용의 지분을 절반도 되지 않는 가격에 넘겼다. 시장에선 너무 아깝다고 했지만, 이 의장과 함께할 수 있다면 좋은 운용사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한 남 대표에겐 미래를 내다본 아깝지 않은 투자였다. 남 대표는 그렇게 10년 넘는 러브콜 끝에 이 의장과 함께하게 됐다.

강 대표는 유경PSG자산운용을 떠났다. 그 무렵 펀드 수익률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던 스타 펀드매니저가 새로운 시작을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의장과 함께 일했을 때가 가장 행복했던 강 대표는 보이저홀딩스를 설립하고 다름자산운용의 지분을 사들였다.

이들은 '가치투자'라는 장르가 영원하다고 믿는다. 1990년대, 외적 변수에 흔들리지 않고 기업의 내재가치를 합리적으로 평가해 장기 투자하면 시장을 이길 수밖에 없다는 명제에서 출발한 가치투자는 시장의 부침에 따라 때론 흔들렸고, 때론 우뚝 섰다.

가치투자에 최근 5~6년은 혹독했다. 2014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성장주 중심의 사이클이 시작되며 가치주는 어려웠다. 외국계 IB들은 성장주와 가치주의 갭이 100년 만에 최대치로 벌어졌다는 리포트를 쏟아냈다.

이 의장은 "기업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데 환경이 달라지며 시장 참가자의 관심도 변했다"며 "금리 인상,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성장주 일변도의 시간은 끝났다. 이제는 좋은 가치주와 좋은 성장주가 공존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시간이 도래한 지금, 지주사는 이 의장이 가장 예의주시하고 있는 카테고리다. SK나 삼성물산 같은 주식은 더블 카운팅 같은 시장의 오해로 싸도 너무 싸다는 게 이 의장의 생각이다.

라이프자산운용을 시작하며 이 의장은 정통 가치투자의 한계를 인정했다.

그는 "미국은 주주 자본주의를 넘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지배주주 자본주의에 머물러 있다"며 "구조적으로 주주에게, 가치투자에 불리한 환경이 최근엔 조금씩 해결될 기미가 보인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사라지고 가치주에 대한 오랜 저평가가 끝날 시기다. 항상 반전은 최악의 상황에서 나온다"고 내다봤다.

이 의장은 남 대표, 강 대표와 함께한 라이프자산운용에서 진화한 가치투자를 꿈꾼다.

남 대표는 "제일 좋은 회사, 주식을 잘 다루는 회사로 남고 싶다"며 "이 의장, 강 대표와 함께라면 시장의 변화를 받아들인 새로운 의미의 진짜 가치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강 대표는 "가치투자라는 장르가 원류, 원전이 돼 주식시장에 영원하길 바란다"며 "라이프자산운용 역시 투자업계의 장르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사진설명 : 왼쪽부터 남두우 대표, 강대권 대표, 이채원 의장]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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