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플로리다 등 친환경 배제 으름장…연기금 영향 클듯



(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미국 일부 주(州) 정부가 운영하는 연기금의 투자대상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전략을 배제하기로 하면서 글로벌 연기금들의 'ESG 연대'에 금이 가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글로벌 주요 연기금은 ESG 노선을 택하며 화석연료 기업에 투자를 줄이거나 배제했으나 금융시장이 휘청거리고 수익이 곤두박질치자 친환경을 따질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모습이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주 미국 텍사스주는 ESG 투자를 주도하는 블랙록과 UBS, BNP파리바 등 10개 금융기관과 348개 투자펀드를 블랙리스트에 올리며 제재했다. 이들 투자회사가 에너지 기업을 보이콧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텍사스주는 텍사스 교사퇴직연금 등 주 정부 산하 연기금이 보유 중인 이들 투자회사의 주식을 매각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투자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작년 9월 주 의회를 통과한 '에너지 차별 철폐법'에 근거를 뒀다. 이 법은 석유 산업과 거래를 거부하는 기업은 텍사스에서 사업을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텍사스주는 상당수 화석연료 사업체가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어 ESG 전략은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텍사스주가 텃밭인 보수 공화당은 전통적인 굴뚝 산업체의 지지율이 높고 친 화석연료 정책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텍사스주가 ESG 전략을 보이콧하는 것은 지역 기업들의 민원이 반영된 결과인 셈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주요 산업이 에너지 업종이거나 공화당 성향이 짙은 지역에서 텍사스와 유사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전날 플로리다주 또한 연기금 운용사가 투자 전략에 ESG를 고려하는 것을 금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지난달에는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주지사가 'ESG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는 법안'의 입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석탄을 생산하는 웨스트버지니아주도 지난 6월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는 금융기관과는 거래를 재검토한다는 내용의 법률을 시행했다. 텍사스주와 비슷한 법안을 지난 3월 제정한 데 따른 조치다. 이에 따라 골드만삭스와 JP모건, 모건스탠리, 블랙록, 웰스파고 등이 주 당국의 주관 사업에서 배제됐다. 이런 움직임은 유타주, 알래스카주, 노스다코타주 등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중이다.

RBC캐피탈마켓 제라드 캐시디 연구원은 "지난 5년간 ESG 정책과 함께 진자는 왼쪽으로 크게 기울었는데 이제 진자가 (공화당 쪽으로) 돌아오고 있다"며 "우리는 아직 지속 가능한 에너지 세계로 도약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외신에 말했다.

키움증권 안예하 연구원은 "한동안 붐이었던 ESG 금융시장이 '에너지 가격급등', '금융시장 구조 변화' 등의 역풍을 맞으면서 성장세가 주춤해졌다"며 "미국 52개 주 가운데 반(反) ESG 법안을 도입했거나 고려하는 곳은 24개주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기후 관련 공시 방안을 철회하도록 요구 서한을 보낸 곳은 16개주에 달한다"고 말했다.

아직 대부분 글로벌 연기금은 ESG 전략에 우호적이긴 하다.

미국 연기금 전문매체 펜션앤인베스트먼츠(P&I)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에너지 전환에 투자된 금액은 7천550억달러로 전년 대비 27%나 늘었다. 이 중 투자금이 가장 많이 흘러 들어간 업종은 재생 에너지로 3천660억달러를 빨아들였다. 캐나다 최대 연기금 운용기관인 캐나다연금투자(CPPI)는 전체 포트폴리오 내 재생 에너지 비중을 2017년의 0.01%에서 올해 3월 1.91%까지 늘리기도 했다.

영국 연기금 중 86%는 ESG 분야에 더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는 영국 연기금 전문매체 펜션즈에이지의 보도도 있었다. 이 가운데 76%는 향후 3년간 이런 추세가 더 증가할 것으로 봤고 20%는 극적으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미국 주 정부들의 이런 움직임은 정부 규제를 따르는 공적 연기금의 전략에도 반영될 수밖에 없고 결국 ESG 전략에 회의적인 연기금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처럼 1개 주 연기금의 규모가 수백조원에 달할 만큼 미국 연기금 전체 규모는 압도적인데 이 중 다수가 ESG 전략에 등을 돌리면 전 세계 연기금의 'ESG 연대'에도 균열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미국 금융당국이 주요 금융기관의 ESG 투자 전략을 조사하기 시작한 것도 부담 요소다.

미국 SEC는 지난 6월 골드만삭스의 ESG 펀드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골드만의 ESG 전략 펀드 2개가 실제로는 투자설명서와 다른 방식으로 투자하면서 규제를 위반했다는 혐의였다. 앞서 독일 도이체방크와 자산운용 부서인 DWS가 독일 연방 경찰로부터 이른바 '그린워싱' 투자를 한 혐의로 조사를 받은 데 이어 연달아 관련 악재가 나오고 있다.

영국 금융감독청도 작년 금융기관들의 ESG 투자에 문제가 없는지 파악하기 위해 변호사로 꾸려진 태스크포스를 꾸리고 조사에 들어갔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금융당국이 ESG 투자에 대해 감독을 강화하는 만큼 연기금 투자도 위축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텍사스 주 의사당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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