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연합인포맥스) 이미란 기자 = 재정지출을 줄이기 위해 과감한 연금 개혁을 단행한 다른 남유럽 국가와 달리 스페인 정부는 잠잠하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최근 취임 후 첫 TV 인터뷰에서 "건드리지 않을 부분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연금이다"며 "정부 지출 삭감을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구제금융이라면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스페인 정부는 내년도 연금을 1%만 인상하는 수준에서 양보했다. 지난 10월 인플레이션율이 3.5%에 이를 정도로 물가가 치솟으면서 중앙은행 추계로는 물가 상승률에 발맞추려면 30억유로(4조2천억원)의 연금지출이 더 필요하지만 말이다.

스페인은 급여율이 그리스에 이어 유럽 2위 수준에 달할 정도로 높다. 스페인 사람들은 은퇴하면 은퇴 전 15년 평균급여의 85%를 연금으로 받는다. 15년만 일해도 평균급여의 50%가 연금으로 나온다.

직장처럼 연금에도 보너스가 있어서 1년에 14개월치 연금이 지급된다.

여기에 학비와 의료비가 공짜고 실직하면 매월 1천400유로(약 196만원)를 최대 24개월까지 받을 수 있다.









<사진설명 : 스페인 국가사회보장청(INSS)>



정부가 연금에 손대지 않으며 스페인 국민은 30%에 육박하는 실업률에도 동요하지 않고 있다.

45년간 농사와 철도 노동자, 인테리어 업자 등으로 일했던 마드리드 시민 블라스 산체스 까르네레로 꼬야도 씨(80세)는 "매월 800유로(약 112만원)의 연금을 받는데 나 혼자 살기에는 충분하다"며 "의료도 거의 무료라 별다른 걱정은 없다"고 말했다.

김건영 코트라 마드리드 무역관장은 "연금은 스페인의 중추다"며 "연금에 손대는 순간 국민적 저항이 일어날 것이다"고 내다봤다.

김 관장은 "이탈리아의 마리오 몬티 총리는 행정가라 연금개혁이 가능했지만 라호이 총리는 선출직이라 개혁에 나서면 다음 선거에서 낙선할 것을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15일 유럽노조총연맹(ETUC)가 정한 '유럽인 행동과 연대의 날'을 맞아 스페인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부상자가 속출했다.

스페인 노조단체들은 임금과 연금, 각종 사회복지 등의 삭감과 세금 인상에 항의하는 총파업을 벌였다. 열차와 버스, 지하철 등 공공교통수단이 전면 마비된 가운데 휴업을 한 공장도 속출했으며 700여편의 항공기가 결항했다.

스페인 내무부는 전국적으로 80여명을 체포했으며 경찰관 20명을 포함해 30여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국민적 저항 외에도 스페인 정부가 연금 개혁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스페인은 다른 유로존 국가와 달리 민간 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214%에 달해 정부 부채(69%)보다 훨씬 골칫거리다. 지난 6월 현재 은행 부실채권이 1천644억유로로 전체 대출금의 9.4%에 이른다. 민간 부채 해결이 연금개혁보다 시급한 것이다.

그러나 은행과 같은 민간 부문에 대한 구제금융으로 스페인 정부의 재정 상황 역시 커플링(동조화)되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은행 자본 확충을 위해 최대 1천억유로의 구제금융 자금을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에 요청했다.

스페인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90.5%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인 2008년에 비해 거의 세 배에 이른다.

지난해 스페인 정부는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를 만 65세로 67세로 늦추는 내용의 소규모 연금개혁을 단행했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5일(현지시간) 토머스 부르고스 스페인 복지부 차관은 "우리의 복지시스템은 수입보다 지출이 훨씬 더 많은 적자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며 "스페인이 올해 국내총생산(GDP)대비 6.3%라는 재정적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중앙정부는 복지시스템 내 어떠한 적자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지난달 루이스 마리아 린데 스페인 중앙은행 총재가 "라호이 총리가 연금을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포기하지 않는 한 스페인 정부는 이미 그리스만큼 커진 재정적자 문제를 통제하지 못할 것이다"고 경고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mr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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