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원 환율 급락에 외환 대응 어려워져

(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정부가 국민연금 등 12개 공적 기관투자자에 해외 자산에 대한 환헤지 비율을 높여 달라고 요청하기로 하면서 총 400억달러 가량의 달러 물량이 시장에 공급되는 효과가 예상된다.

아직 연기금 업권은 당국의 요청에 대해 들은 바 없다는 입장인 가운데 일부 공제회는 먼저 환헤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외환당국은 주요 공적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기존 해외자산의 환헤지 비율을 높여 달라고 요청하기로 했다. 앞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답변 과정에서 주무 부처를 통해 관련 기관에 요청할 것이라고 말한 데 따른 조치다.

추 부총리가 가리키는 공적기관은 국민연금·사학연금 등 4대 연기금과 행정공제회, 교직원공제회 등 7대 공제회, 우정사업본부까지 12곳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외환당국은 이들의 전체 해외자산 규모가 4천억 달러 안팎일 것으로 보고 있다. 당국은 이 가운데 어느 정도 규모로 환헤지 비율을 상향 요청할지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지만, 시장은 약 10%포인트 안팎일 것으로 추정하는 분위기다.

지난 7월 말 기금운용현황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외화자산 규모는 3천340억달러에 달한다. 국민연금이 이같이 환헤지 비율을 높이면 약 340억달러 규모의 달러 물량이 시장에 추가로 공급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100% 환오픈 원칙이지만 전체 외화자산 중 ±5% 이내 범위에서 환헤지를 할 수 있는데 당국 요청을 받아들이면 일정 기간 10% 정도까지 환헤지 비율을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공적 기관투자자들이 외환당국의 요청을 받아들이면 장기적으로 달러-원 환율에 하방 압력이 될 수 있다.

공적 기관투자자들이 환헤지 비율을 올리려면 선물환을 매도해야 한다. 이때 은행은 선물환 매수 포지션이 되고 이 포지션을 헤지하고자 외화를 차입하면서 다시 선물환을 시장에 매도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외환시장에 달러 공급이 늘어나 달러-원 환율이 하락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외환당국이 공적 기관투자자들에게 환헤지를 요청한다고 당장 400억달러에 달하는 물량이 시장에 쏟아지는 것은 아니다. 통상 일일 거래량이 70억달러인 우리나라 외환시장에 그만한 물량이 단기간에 시장에 출회하는 것 또한 부담스러운 일이고 당국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대신 연기금의 상당한 물량이 중장기적으로 나올 수 있는 만큼 달러-원 환율 상승에 강하게 베팅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당국의 일차 목표일 것으로 보인다.

주요 연기금 중 국민연금과 사학연금은 현재 모든 해외자산에 대해 환오픈 전략을 취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도 해외채권 부문에서 환오픈 비중을 오는 2025년까지 약 30%로 늘린다는 계획이며 현재 10% 정도까지 진행된 상황이다. 우정사업본부의 해외주식 부문에선 환오픈 비중이 더 크다.

외환당국의 요청과 별개로 일부 공제회는 하반기 들어 자체적으로 일부 환헤지를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기적으로 달러-원 환율이 1,400원 중반대까지 치솟았는데, 그만큼 외환자산은 환차익 효과를 누렸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환헤지에 나서면 달러-원 환율 1,400원대로 투자한 효과를 누리게 된다. 달러-원 환율이 하락하면 그만큼 환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공제회로선 1,400원대의 환헤지는 수익 측면에서도 좋은 선택이라는 판단이 선 것이다.

다만 일각에선 달러-원 환율이 1,300원대 초반까지 단기 급락하면서 환헤지를 하기 애매해졌다는 반응도 나온다. 1,300원대 초반이면 올해 달러-원 환율 밴드의 중간 가격대인데 향후 경기침체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환율 반등 가능성도 여전하다는 이유다. 달러-원 환율이 재차 1,400원대로 뛰면 현재 가격대에서 환헤지에 나선 기관은 외화자산 가격이 추가 하락할 때 환차익 효과를 누릴 수 없게 된다.

공제회 관계자는 "달러-원 환율이 지난 한 주에만 100원이 빠져버리면서 환헤지 전략을 세우는 게 골치 아파졌다"며 "1,400원대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제로 전략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환율이 단기 급락하면서 섣불리 나서기 애매해졌다"고 말했다.

한편 연기금 및 공제회는 외환당국의 요청에 대해 현재로선 전달된 바 없다고 밝혔다. 아직 당국 내부에서 검토하는 중인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 당국의 협조 요청이 전달돼야 대응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연기금 관계자는 "아직 당국 요청에 대해 들은 바 없다"며 "기관마다 환 전략이 다를 건데 운용지침 개정이 동반돼야 하는 만큼 환헤지를 일부 하더라도 당장 빠르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국민연금공단 제공]

 


jh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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