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정원 기자 = 금융지주 수장 선임을 위한 절차가 잇따라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금융감독당국이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선임 과정에 개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최근 금융위원회에서 '문책경고'의 중징계가 확정된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 "현명한 판단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혀, 사실상 손 회장의 연임에 제동을 건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 원장의 발언은 다양한 추측을 낳고 있다.

이 원장은 손 회장에 대한 발언에 대해 "외압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하고, 금융지주 CEO 선임에 대해 일종의 '가이드라인'과 같은 방향성을 제시한 것에 대해서도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금융권에서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발언 시점과 메시지 수위 탓에 '관치금융'과 '정부개입'에 대한 우려는 좀처럼 가시질 않고 있다.

◇ 투명·공정 언급 후 작심발언 쏟아낸 금감원장
이 원장은 14일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들과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징계안이 확정된 손 회장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발언한 것의 구체적 배경을 묻는 질문에 "외압이나 특정 임무를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은 전혀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이 원장은 한국 금융시장과 기관들의 수준이 높아진 점과 지주 회장의 영향력이 급격히 커진 점을 고려해 회장 선임 절차 상의 투명성과 공정성, 선진성 등을 관리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민간의 영역인 만큼 회장 후보 추천 및 선임 과정 등 이사회 고유의 권한에 개입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절차의 투명성과 관련해 당국이 입장을 밝히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는 게 이 원장의 판단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 원장의 발언이 단순 관리와 개입의 경계를 오가는 데 있다고 보고 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큰 틀에서 보면 민간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규제당국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로 보이지만, 행간을 들여다 보면 '경고'의 메시지로 읽히는 경향이 강하다"며 "이번에도 '국민의 눈높이'나 '선진화된 기준' 등의 단어를 동원한 것을 보면 결국 금융지주 이사회도 관성에 의존한 선택이 아닌 새로운 선택을 하라는 압박이 아니겠나"고 했다.

이날 이 원장은 '문책경고' 중징계로 연임 도전이 어려워진 손 회장과 관련된 질문들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최소화하면서, CEO 선임 절차와 관련한 투명성과 합리성에 대해 수 차례 강조하며 금융지주 이사회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 원장은 손 회장을 두고 한 발언이 "최근의 경제 상황이나 향후 선진 금융으로 도약할 해당 금융기관의 여러가지 입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장 좋은 판단을 하셨으면 한다는 의미였다"고 설명하면서도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유능한 경영진의 선임이 이사회의 가장 중요한 권한이자 책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는 앞서 이 원장이 손 회장의 징계 배경 등과 관련해 지난 10일 "(우리은행의 라임펀드 사태는) 고의로 벌어진 심각한 소비자 권익 손상 사건으로 저는 인식을 하고 있다"고 말한 것과 맞물려, 손 회장의 회장 자격에 대한 입장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평가로 이어졌다.

이 원장의 '기준 미달' CEO와 관련된 언급도 손 회장을 염두에 둔 것이라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2020년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때와 마찬가지로 손 회장이 소송을 통해 연임에 필요한 준비를 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렇다 보니 이 원장이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하고 이행하는 분이 지휘봉을 잡고 운영하는 것과, 그에 미치지 못하는 분이 운영한다는 경우를 상정해 볼 때 당연히 후자에 더 타이트하게 감독 권한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건 너무 당연하다"고 설명한 것 또한 업계에선 일종의 경고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에 더해 이 원장은 "금융사의 CEO 선정에는 이사회 절차 자체의 투명성과 합리성, 후임자 물색 과정에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기준을 확보해야 한다"고도 언급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 원장은 그간 CEO 중징계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여왔다.

하지만 최근의 발언들을 종합하면 이미 정부 차원에서 이 원장을 통해 손 회장 연임에 반대한다는 뜻을 직간접적으로 내비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금융 이외의 금융지주 또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손병환 NH농협금융 회장의 임기는 오는 12월 31일까지고,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도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맞는다.

금융당국의 이러한 스탠스에 손 회장 측도 아직까지 징계안과 관련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노성태 우리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은 기자들과 만나 CEO 인사와 관련해 "모두 심사숙고하는 중이라 별도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반복되는 관치 악몽…"이유는 달라도 답은 똑같아"
관치금융 우려가 나오는 건 금융권의 오래된 트라우마 때문이다. 우리나라 금융지주는 확실한 주인이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외풍에 심하게 흔들리곤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융당국 수장 교체가 이뤄지고 나면 금감원 검사와 징계 등으로 민간 금융기관 CEO들이 물갈이되는 역사가 반복돼왔다.

이 과정에서 직에서 물러난 CEO는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다.

노무현 정부로 거슬러 올라가면 2004년 9월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국민카드 흡수합병시 회계처리 문제를 이유로 금감원으로부터 중징계를 받고 불명예 퇴진했다.

김 행장이 정부의 LG카드 사태 해결과정에서 비협조한 것을 문제삼은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이명박(MB) 정부 들어와서는 노골적인 낙하산 인사가 끊이지 않았다.

이 정부에서는 일괄적으로 금융회사 CEO들에게 사표를 받기도 했다.

2008년 4월 당시 김창록 산업은행 총재를 시작으로 윤용로 기업은행장, 박병원 우리금융지주 회장, 박해춘 우리은행장 등이 사의를 표명하고 모두 물러났다.

그 자리는 MB맨들이 채웠다. 강만수 전 산은금융 회장과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은 '4대 천왕'으로 불리며 금융권을 호령했다.

하지만 이들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모두 물러났다. 이 때에는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권 인사 모임)' 출신들이 승승장구하며 영전했다.

이덕훈 전 수출입은행장, 홍기택 산업은행장,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 등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PK(부산·경남·울산)' 출신이나 노무현 정부 시절 인사, 경희대 라인을 중심으로 낙하산 인사가 계속됐다.

김태영 은행연합회장을 비롯해 김지완 BNK금융그룹 회장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김용덕 손해보험협회장, 이동빈 수협은행장 등이 이러한 인연 등으로 엮여 자리에 올랐다는 뒷말이 나왔다.

특히 정부 지분이 있는 우리은행은 정권 교체기마다 수난사가 끊이질 않았다.

대기업 비자금 사태와 특혜 대출 의혹, 채용비리 등 각종 사건 가고에 연루돼 검찰에 소환되고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아 자리에서 물러났다.

2001년 출범부터 완전 민영화되기까지 20년 간 여섯 번이나 회장이 바뀌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권이 바뀌고 CEO 교체기가 임박해지면 금융당국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얘기가 부실 경영과 지배구조 문제다"라면서 "최대한 합리적인 이유로 CEO 자리에서 내려오려는 것일 뿐 이미 방향은 서 있기에 결과가 달리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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