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세계적인 유명 사진작가 K씨는 가을 산(山)을 색동 한복을 입은 여인에, 겨울 산은 누드에 비유했다. 지난주에 모처럼 들른 과천 정부 청사 뒤편 관악산의 자태는 한복을 3분의 2쯤 벗은 모습이랄까.

계절이 바뀌어 겨울의 초입으로 들어서자 세종시로 이전해야 할 공무원들은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이들은 세종시로 12월 중순부터 입주하는 일이 그동안은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되겠지' 하고 지내다가 막상 당면하자 '멘탈 붕괴'에 빠졌다.

대부분 공무원은 동료끼리 뭉쳐서 아파트를 얻거나, 원룸을 계약하는 일에 온 정신이 팔려 있었다.

재정부의 경우 장관과 1ㆍ2차관이 타 부처와의 각종 업무 협의, 국회, 청와대 관련 업무를 위해 명동 은행회관 건물에 있는 기존 사무실을 활용할 계획이다. 1급과 국장들은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세종시에 머물고, 주말이 이어지는 월요일 또는 금요일에 서울에서 회의 일정을 몰아서 잡을 예정이다.

과장급 이하 실무자들도 세종시에 머무는 시간을 일주일에 3일로 최소화하고 각자 가정(Home)이 있는 서울서 4일을 보낼 것 같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이미 관계부처 차관회의는 매주 금요일 오후 4시께 잡는 것으로 잠정 결론났다.

예산실 쪽은 현재 계획상 예산안이 작년처럼 연말 일에 통과된다는 전제하에 그때까지 서울에 있을 장소를 찾고 있다. 12월 말까지 매일 국회에 보고해야 할 상황에서 세종시로 이전한다는 것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세종시 이사와 서울 사무실 공간을 동시에 마련해야 하는 그야말로 극단적인 이중고인 셈이다.

국제금융국은 시장참가자들이 모두 서울 한복판에 있는데 정책 관장 소관국(局)이 시골로 옮겨가는 웃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금융시장과의 소통은 어려워지고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 관리 비용도 올라갈 것이다.

정부는 사당동 등 서울의 주요 교통 요충지에 매일 아침 6시30분에 세종시로 출발하는 통근버스를 6개월 동안 운영한다는 고육책을 내놓고 있지만, 하루에 왕복 4시간 통근버스에서 시달리고 무슨 업무를 어떻게 하라는 것에 대한 설명은 없다.

세종시에 공무원들이 입주하면 상당기간 동안 출퇴근을 비롯해 주말에 이동하는데 시간 대부분을 허비하는 '삶의 황폐화'가 예상된다. 이들의 '삶의 질' 추락은 정책 품질의 저하로 나타날 것이다.

흔히 공무원을 '가늘고 긴' 가장 안정적인 채권형인 '국채형' 인생에 비유한다. 위험이 큰 굵고 짧은 '한 방 인생'인 여타 '주식형' 인생과 비교하는 우스개다.

세종시 이전으로 중앙부처 공무원은 정주권(定住權)의 고단함이 더해진 조기상환 수수료도 없는 제로 쿠폰의 채권형 인생인 셈이다.

(취재본부장/이사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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