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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숙 수협 본부장>



<편집자주: 유리천장. 일을 잘하고 똑똑해도 사회에서 여성이 높은 지위에 오르기까지 뚫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일컫는 말이다. 금융시장에 종사하는 여성들도 유리천장을 피할 수는 없었다. 금융시장도 4대 은행에 여성임원이 없을 만큼 두껍기로 소문난 유리천장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유리천장을 깨고 상위 1%로 우뚝 선여성 금융인들을 만나봤다. 신입사원 시절 조그만 실수에도 주눅이 들고 남몰래 울기도 했던 여직원이 실력파 임원이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 유리천장 아래서 연약한 꽃으로 남기보다 이를 뚫고 큰 나무가 되는 쪽을 택한 베테랑 여성 금융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영 기자 = "보신탕요?"

밥 한 끼 때문에 잠을 못 이룰 줄이야. 고객은 다른 고기는안 좋아하니 꼭 이 메뉴를 먹고 싶단다.

식사 약속을 정하기는 했으나 식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눈을 질끈 감고 꿀꺽. 한 입 넣은 요리는 상상했던 것보다는 참을 만했다. 강신숙 수협 강북지역금융본부장은 "지금도 사람들은 내가 보신탕을 좋아하는 줄 알아요"라며 웃는다.

1979년 전주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수협에 입행해서 32년 동안 수협 사람으로 지냈다. 남자들 위주로 구성돼 있던 조직이고 고객을 만날 경우도 많아 보신탕과 같은 사례는 다반사였다.

술을 좋아하는 고객을 만나는 날이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물 잔, 행주, 빈 잔 등을 동원해가며 노력했다.

"마실 수 있는 데까지는 최대한 마셔보고, 그래도 안되면 양해를 구해요. 노력한 점을 보여주면 어느 정도 수긍해 주니까"

이런 노력은 실적으로 이어졌다. 부드러움과 단단한 목표의식이 20살짜리 여직원을 본부장 자리까지 올려놓은 셈이다.

"자신이 할 수 없는 부분을 인정할 땐 인정하고. 그러나 변해야 한다면 과감히 변신해야죠"라고 그는 말한다.

▲"커피? 그것도 노하우" = 30년 전이니 당시 갓 은행에 들어온 신입행원에게 커피심부름은 예삿일이었다. 산골마을에서 자란 탓에 커피맛도 익숙하지 않았던 그. 별 수 없이 커피를 탈 때마다 일일이 맛을 봤다.

"그땐 커피 심부름도 내가 맡은 일이었으니까. 잡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앞서 일단 잘해야겠다 생각했죠"

어느새 설탕,크림의 적정 비율도 알게 되고 당을 싫어하는 고객의 커피는 설탕을 빼는 센스까지 생겼다.

고객 맞춤 서비스에 대한 그의 말에 진심이 묻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커피 한 잔도 소홀히 하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센스는 지금의 그를 만든 원동력이 됐다.

"고객을 진실과 정성으로 섬기면 다양한 네트워크가 생겨요. 지금은 20년 이상 알고 지내 온 열성적인 고객들도 많아 소개마케팅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죠"

그러고 보니 강 본부장은 인터뷰가 있던 날에 한방차를 내놓았다. "날씨가 너무 추우니까 몸을 따뜻하게 해주라고" 하며 세심한 설명을 곁들였다. 고객 맞춤이다.

▲걸어 다니는 규정집 = 그러나 은행 생활은 어디까지나 실력으로 판가름나는 법. 어린 나이에 입행한 만큼 그는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맡은 업무의 전문지식을 갖춘 직원이 되는 것은 기본이었다.

"은행 야근이 끝나면 독서실 가서 공부하고, 친구 만날 때도 규정집은 필수품이었어요"

수협의 특성상 알아야 하는 각종 규정이며 협동조합원칙 등도 달달 외웠다.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서 듣는 등 나름 암기 요령도 터득했다. 나중에 동료 직원들은 그를 걸어다니는 규정집이라 부를 정도였다.

부단한 노력 끝에 그는 전국 2등으로 전환고시에 합격했고 3급이 됐을 땐 전주에서 서울 노량진 지점으로 발령이 났다.

"두메산골에서 서울로 오기까지 정말 한 순간도 그냥 쓴 적이 없어요"라며 강 본부장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사회생활을 하느라 뒷전으로 밀렸던 공부도 계속했다. 방송통신대 과정을 마치느라 평일 저녁도 휴가도 반납하기 일쑤였다. 이후 연세대학교 석사 과정에 입문할 때는 꿈만 같아 허벅지를 꼬집기도 했단다.

▲건전여신 비결 "내 돈 내고도 하겠는가" = 그렇게 열심히 일한 끝에 강 본부장은 수협에서 처음으로 여직원으로서 가계 대출업무를 맡았다.

"예전에는 여직원들은 대출 업무를 잘 안맡겼어요. 상사에게 잘 할 테니 가계대출을 맡게 해 달라고 요청했죠"

당차게 업무를 맡은 만큼 손실을 내선 안 됐다. 여신 업무를 꾸준히 맡았지만 지금까지 부실여신은 거의 없다. 그만의 원칙 때문이다.

"저 물건이 부도가 났을 때 내 돈을 주고도 사겠느냐. 이걸 생각해봐요."

내 돈 주고 못 살 물건을 담보로 고객과 거래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당좌개설에 앞서 물건 파악에도 꼼꼼하게 부지런을 떨었다. "일단은 눈빛을 보죠. 저 일을 하려는 의지가 확실히 있는가"

현장 탐문은 필수다. 처음에 갔을 때 괜찮았던 곳도 의구심이 생기면 무조건 다시 가본다는 강 본부장. 실적을 올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예전에 한 유통업체 관련 건을 맡은 적이 있는데 당시 현장을 가보니 왠지 꺼림칙했어요. 실질적인 영업은 없고 전시용 물건만 가득 쌓여 있더라고"

당시 주변 상인들에 두루 물어보며 재차 확인한 끝에 당좌개설을 거절했는데 나중에 보니 조직폭력배가 동원된 부실 물건이었다고 한다. 확인. 재확인이 중요하다고 강 본부장은 강조했다.

▲매일아침 "너는 예쁘다" = "너는 잘할 수 있다. 힘내라 강신숙"

강 본부장은 매일 아침 양치질을 할 때마다 거울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때로는 `오늘도 방카슈랑스 1개, 카드 1개`, `주름 생겨도 너는 예뻐!`라고 내용을 바꿔보기도 한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말해 온 자기암시는 강 본부장의 생활에 마법같은 힘을 실어줬다.

"말하면 진짜로 그렇게 될 가능성도 커지죠. 매일 좋은 말을 하면서 자기 스스로 용기를 북돋워 주는 거에요"

그 덕분인지 강 본부장은 최근 수협 40주년 광고 모델로 발탁되기도 했다. 자기암시로 더 예뻐질 수 있다. 당장 실천해 볼 일이다.

금융권에 입사한 후배들에게 강 본부장은 중장기 비전을 세우라고 말한다. 20대에는 대리, 30대에는 팀장, 그 다음에는 부장. 이렇게 플랜을 짜 놓다 보면 스스로 그것을 지키고자 행동하고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다.

강 본부장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입행해서 지금까지 오는 동안 수없이 힘든 과정을 겪어왔다. 그때마다 그를 지킨 힘은 긍정적인 몰입과 목표 의식이었다.

본인만의 좌절 대처법을 묻자 강 본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썩은 사과를 생각하면 썩은 사과만 먹을 수밖에 없어요"

강 본부장의 새해 계획은 뭘까. "행장님이 올해는 죽을 힘을 다해서 영업에 임하라고 하셨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웃음 가득한 표정에서 올해 제대로 힘을 다하다는 각오가 묻어난다.

강신숙 본부장은 지난 1979년 전주지역 수협중앙회로 입회한 후 오금동 지점장, 서초동지점장, 개인고객부장, 심사부장을 거쳐 현재 수협은행의 강북지역금융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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