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희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 상무>



<편집자주: 유리천장. 일을 잘하고 똑똑해도 사회에서 여성이 높은 지위에 오르기까지 뚫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일컫는 말이다. 금융시장에 종사하는 여성들도 유리천장을 피할 수는 없었다. 금융시장도 4대 은행에 여성임원이 없을 만큼 두껍기로 소문난 유리천장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유리천장을 깨고 상위 1%로 우뚝 선 여성 금융인들을 만나봤다. 신입사원 시절 조그만 실수에도 주눅이 들고 남몰래 울기도 했던 여직원이 실력파 임원이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 유리천장 아래서 연약한 꽃으로 남기보다 이를 뚫고 큰 나무가 되는 쪽을 택한 베테랑 여성 금융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영 기자 = "저는 이공계 출신이다보니 아무래도 숫자가 익숙하죠. 마케팅 업무도 수치적 접근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카이스트에서 건설환경공학 석사,박사를 마치고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 환경공학 박사 과정을 마친 이력 때문인지도 모른다. 검정테 안경과 차분한 말투는 한눈에 봐도 공부 잘하는 사람의 분위기가 풍긴다.

2009년에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 입행했으니 은행 업무만 치면 3년차. 나이도 30대로 젊다.

건설환경공학을 전공하고 30대의 젊은 나이로 은행의 소매금융 마케팅 헤드를 맡고 있는 이력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정작 안 상무의 표정은 차분하기만 하다.

그러나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변화와 목표를 설명하는 안현희 상무의 목소리는 시원시원하다. 안 상무에게 물었다. 이공계 전공의 그는 어떻게 은행 임원이 됐을까.

▲수자원 연구에서 소매금융 마케팅으로 = "수자원관리를 전공했어요. 수자원 정책이 가지는 경제적 의미 이런걸 연구하는 거죠"

안 상무는 멍한 표정의 기자에게 전공을 최대한 쉽게 설명해줬다. 수자원 정책을 공부한 안 상무가 경제, 경영 쪽으로 발을 들이게 된 것은 맥킨지&컴퍼니 서울 사무소에 들어가면서 부터다. 경영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면서 그의 인생 항로는 조금씩 방향을 틀었다.

경영컨설팅 업무 초반에는 전공과 비슷한 분야인 중공업, 환경, IT 기업들과 주로 프로젝트를 했다. 그러다가 차츰 보험회사를 비롯한 금융권 관련 프로젝트도 맡게 됐다.

그러던 중 2008년에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로 이름을 바꾸기 전의 SC제일은행을 만났다. 당시 SC제일은행은 본부직원들의 영업점 목표를 설정하고 성과를 측정하는 프로세스를 마련하던 참이었다. 은행의 비전을 새로 선포하면서 거점을 넓히기 위한 단계이기도 했다. 그때 프로젝트를 같이 하고 나서 1년후 안 상무는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공계 출신으로 숫자에 강한 그의 면모는 업무에 도움이 많이 됐다.

"금융권과 이공계는 이질적일 것 같지만 알고보면 수치나 논리 면에서 DNA가 비슷해요. 알고보면 금융권에 이공계 출신이 많다니까"

▲분석에 강하다 = 안 상무가 SC제일에 처음 입사해서 맡은 일은 CRM(고객관리)였다. 고객 정보와 데이터 담당 마케팅을 주로 하는 마케팅분석부였다.

이후 업무 반경을 지속적으로 넓혀간 결과 최근에는 광고부터 고객 행사, 홍보 데이터마케팅 등을 두루 총괄하고 있다.

"보통 마케팅은 세일즈 관련 업무와 겹치기도 하는데 주로 분석 업무를 하다가 마케팅으로 업무를 확장하다보니 접근 방식이 다른 편이에요"

안 상무는 마케팅에서 고객에게 감성적으로 다가갈 때 놓치기 쉬운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영역에 강하다. 금융 상품을 홍보할 때도 상품으로 얼마나 어떻게 수익이 나는지 면밀하게 파악한다.

최근 출시한 '모기지원' 상품의 경우에도 그랬다. 주택담보대출 이자율과 입출금계좌 이자율을 한도 내에서 비슷하게 맞춰주는 상품이었다.

안 상무는 이 상품을 활용하면 어떤 혜택이 있는지 수치로 명확히 설명하는데 공을 들였다. 그리고 최대 50%까지(세전) 대출이자가 절약된다고 홍보함으로써 귀에 쏙쏙 들어가는 마케팅을 펼쳤다.

▲광고만 히트치면 뭐하나 = "상품이나 광고는 기억하는데 정작 그 회사가 어딘지는 모르면 안되겠죠. 숫자로 명확히 포인트를 뽑아내고 고객 입장에서 금전적 혜택을 짚어주는 게 중요해요"

금융회사에 고객이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큰 감동은 다른 게 아니다. 금전적 혜택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이다.

안 상무는 옷깃에 달린 '감동으로 보답하겠습니다'라는 배지를 가리키며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앞으로 이런 은행이 될 거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광고와 실제 사업성과가 연결되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는 '성과 마케터'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그의 포부는 고객이 추천하고픈 은행이 되는 단계까지 은행 서비스나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안 상무는 "고객이 추천하면 일단 그 은행의 비즈니스목표는 달성한 셈"이라며 "추천한다는 것은 은행 서비스에 만족했다는 의미로 봐도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객과 얼굴을 보면 달라지는 것들 = 그럼에도 고객을 만나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소매금융 마케팅을 맡은 만큼 고객과의 접점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고객과 만나는 일은 다른 업무와는 성격이 달라요. 이건 고객이 시간을 내주지 않으면 못하잖아요"

최근에는 서울, 부산에서 5차례에 걸쳐 고객들을 초청하는 행사도 치렀다. 가구박물관에서 고객들과 저녁을 먹고 신라호텔에서 1천명의 고객이 모이는 대형 행사를 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을 터.

그럼에도 그는 직접 고객을 초청해서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올해 1월 스탠다드차타드은행으로 행명을 바꿨어요. 고객 입장에서는 은행이 없어지는 줄 알고 불안해하시거나 향후 어떻게 될지 궁금해할 수 밖에 없어요. 그래도 직접 만나서 인사도 하고 설명을 드리면 훨씬 낫죠"

이런 그의 생각은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의 고객 서비스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안 상무는 주부 고객층을 대상으로 재테크 강좌를 여는 등 고객과의 교류에 적극적이다.

"자주 만나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직접 얼굴을 보면 은행에 대한 고객들의 생각도 듣게 되고 개선할 부분을 건의해주기 때문에 도움이 많이 돼요"

사무실에서 분석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고객을 만나면 은행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목소리를 내라 = 안 상무는 조직에 순응하기보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직원이 조직을 발전시킨다고 말한다.

회사가 지시한대로 동료와 비슷하게 따라가기보다 10년후 본인이 어떤 상태일지 자신만의 목표를 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그는 조언했다.

"직원들을 만나 본인의 목표가 뭐냐고 물었을 때 대답을 못하는 분들도 있어요. 목표가 없으면 일은 그냥 돈을 벌기 위한 '일'이 돼 버리죠"

일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단계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면 즐겁게 할 수가 없다. 그만큼 주도적으로 일하기도 어렵다. 이럴 때 가장 중요한 순간이 목소리를 내는 때다.

"부서내에서 목소리를 내는 순간 그에 책임을 지게 되잖아요. 헛소리 안하게. 그러면 자연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주도적으로 일하게 됩니다"

안 상무는 목소리를 내면 그에 걸맞은 전문성을 갖추게 되고 그만큼 더 노력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은행 산업은 챌린지(도전)에 직면하는 상태가 꽤나 오래갈 것으로 봅니다. 남들보다 적극적으로 경험하고, 스스로를 다잡아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안현희 상무는 지난 2004년부터 2009년까지 맥킨지&컴퍼니(McKinsey & Company) 서울사무소에서 프로젝트 매니저, 리스크 관리 전문가 등을 역임한 후 2009년 SC제일은행 마케팅분석부, 멀티채널 프로젝트 총괄 업무를 담당했다. 현재는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소매금융본부(CB)에서 소매금융마케팅을 맡고 있다.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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